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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녹차리소또? "우린 재밌는 메뉴만 만든다"

1 이 기사는 2017-03-15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개성있는 메뉴로 외식업 판을 바꾼 '테이스팅룸'
건축가·조명 디자이너 안경두·김주영 부부가 대표
맛있어도 특이하지 않으면 메뉴 안 올리고
누가 따라하면 다 바꾸는 청개구리 본능대로 운영

외식업을 만드는 사람들③ '테이스팅룸' 안경두·김주영 대표
테이스팅룸·멜팅샵·페어링룸을 통해 늘 새로운 메뉴와 공간을 제안하는 안경두(오른쪽)·김주영 대표. 

테이스팅룸·멜팅샵·페어링룸을통해 늘 새로운 메뉴와 공간을 제안하는 안경두(오른쪽)·김주영 대표.

아이스크림에 캐러멜 팝콘을 덕지덕지 붙여 소금과 함께 내는 '팝콘 솔트 아이스크림', 납짝한 빵 위에 채소를 듬뿍 얹어낸 '플랫 브레드'까지. 2009년 청담동에 문을 연 '테이스팅룸'은 기상천외한 메뉴가 인기를 끌며 핫플레이스로 자리했다. 빠르게 변하는 외식 트렌드 때문에 '개성'을 내세운 많은 레스토랑이 '반짝' 인기를 누리고 사라져갔지만 테이스팅룸은 달랐다. 10년이 지난 요즘도 식사 시간엔 늘 만석이다.
 
부부인 안경두(47)·김주영(41) 테이스팅룸 대표는 만족하지 않고 계속 새롭게 도전한다. 2014년 '멜팅샵'(신사동)을 새로 열었고, 2016년엔 테이스팅룸 1호점(청담동)을 '페어링룸'으로 바꿨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요리 스펙트럼이 아시안으로 더 넓어졌고 개성은 더 강해졌다. 리조또에 찐 보리굴비를 찢어 올려내는 '보리굴비녹차리소또', 메주와 페퍼소스로 양념한 항정살을 넣은 '항정살페퍼메주파스타' 처럼 말이다. 각각 건축가와 조명 디자이너라는 본업 안에서도 그간 분주하게 뛰었다. CJ푸드월드, 갤러리아백화점 푸드코트 '고메이494', 카페 '코코브루니' 같은 트렌디한 외식 공간도 이들 손에서 나왔다. 재미있는 메뉴와 인테리어로 외식업을 이끌고 있는 부부를 청담동 '페어링룸'에서 만났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굳이 잘 되는 테이스팅룸을 바꾼 이유가 뭔가. 
안경두(이하 안) "테이스팅룸이 2009년 문을 열었으니 지난해인 2016년이 8년째 되는 해였다.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테이스팅룸을 그대로 하는 것보다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계속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디자인의 기본이다. 그동안 건물을 팔라는 제안이 많아 다른 곳에서 할까도 생각했지만 외식 브랜드를 처음 시작한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곳에서 새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었다. 10년 후엔 이곳에 또 다른 새 브랜드를 열 것이다."
   
브랜드마다 컨셉트가 다르다. 어떻게 컨셉트를 정하는 기준은. 
클래식 컨셉트로 꾸민 청담동 '페어링룸' 1층. [사진 페어링룸]

클래식 컨셉트로 꾸민 청담동 '페어링룸' 1층. [사진 페어링룸]

  
안 "테이스팅룸은 당시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했던 컨셉트를 그대로 담았다. 빈티지 베이스에 건축 자재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식의 인더스트리얼 요소를 가미한 건데, 2009년 당시엔 인더스트리얼은 아웃사이더, 즉 비주류에서 가장 트렌디한 것이었다. 우린 주류에 있는 건 하지 않는다. 남들이 안하는 걸 한다. 객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더스트리얼이 주류가 됐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디자인은 익숙해선 안된다. 그래서 2014년 도산공원 인근에 멜팅샵을 열 땐 인더스트리얼의 반대 성격인 클래식을, 페어링룸은 멜팅샵보다 더 깊이 들어간 코어 클래식 컨셉트를 선택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인테리어 컨설팅 고객들은 테이스팅룸·멜팅샵·페어링룸을 안테나숍으로 여기는 것 같다. 각 공간에 당시 우리가 나가려는 컨셉트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
건축가와 조명 디자이너라는 본업만으로도 바쁠텐데 왜 레스토랑까지 열었나. 
김주영(김)  "미국 뉴욕에서 남편은 건축가로, 나는 조명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4년 한국에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 최고의 외식 공간을 디자인하는 회사를 만들자'고 다짐하며 한 가지를 더 약속했다. '우리가 운영하는 외식공간을 만들자'였다. "
안 "새로운 건 아니었다. 뉴욕에서도 외식 공간을 설계·디자인하면서 지인들과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외식공간을 주로 설계하다보니 고객, 그리고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FCI라는 뉴욕에 있는 프렌치 요리학교에 가서 요리를 배웠다. 술을 못하는 나 대신 아내가 와인을 배웠다. 한국에 온 후 각자 일하느라 오픈이 늦어졌다. 둘 다 먹을 걸 좋아하는데 맛있는 음식 보다 재미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미국에서도 특이한 요리가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우리가 좋아한 재미있는 메뉴로 레스토랑을 해보고 싶었다. "
음식은 맛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안 "맛을 내세운 곳은 너무 많다. 여기도 맛있고 저기도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특이한 걸 만들었다. 물론 특이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맛까지 있어야 한다. 유혹이 많았다. 특이하진 않은데 맛은 있어서 그냥 메뉴에 내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10년 동안 매번 유혹을 뿌리쳐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게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좋아해주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비전은 '특이함을 추구하고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객기를 부리는 건 디자인할 때와 같다."
새로운 메뉴는 어떻게 탄생하나. 
페어링룸의 보리굴비녹차리소또. [사진 페어링룸]

페어링룸의 보리굴비녹차리소또. [사진 페어링룸]

안 "메뉴 개발은 온전히 내 몫이다. 익숙함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먹고 있는 요리는 수십 수백년간 맛있는 조합이라는 것이 증명돼 굳어진 것이다. 일단 그걸 부정하고 시작한다. 우선 메뉴 개발 과정에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먹이지 않는다. 사람들 얘기 듣다보면 보편타당한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또 조리법을 바꾸면 익숙한 식재료로도 새로운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리굴비녹차리소또는 밥을 녹찻물에 말아 함께 먹는데 그걸 다른 시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녹차물에 밥을 마는 대신 녹차 가루와 우유로 만든 리소토에 말차 가루를 넉넉하게 뿌려 보리굴비와 함께 먹는 식이다. 같은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조리기법이나 온도, 식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익숙함에 새로움이 더해져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디저트 메뉴가 많은 편이다. 
페어링룸의 디저트 스웨디시번&밀크. [사진 페어링룸]

페어링룸의 디저트 스웨디시번&밀크. [사진 페어링룸]

안 "테이스팅룸을 오픈할 때만 해도 디저트가 인기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픈 때부터 디저트 메뉴를 많이 넣었다. 다른 레스토랑은 전체 메뉴 중 디저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5%, 많아도 10% 정도인데 우리는 30%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인다."
김 "디저트를 안 먹으면 식사가 안 끝난 것 같다. 다른 식당 고객이 메뉴 3~4개씩 주문해 배부를 때까지 먹는다면 우리 고객은 디저트까지 계산해 주문한다. 테이스팅룸을 오픈할 때부터 차와 디저트, 와인과 음식 등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매장에 오는 고객 중에는 사람이 몰리는 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 찾아와 디저트만 먹고 가는 사람이 많다. 일반적인 레스토랑에서 오후 3~5시면 영업을 쉬는데 우리가 그 시간을 없앤 것도 이런 이유다. 단골 고객 중에는 오후 3~5시에 찾아와 식사하는 사람도 많다."
레스토랑 안팎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더라. 공간을 디자인할 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겨냥하나.  
안 "전혀.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이슈된 건 10년도 안됐다. 하지만 공간을 디자인 하는 건 인류가 수백 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나만 해도 30년 동안 공간을 설계해왔다. 어떻게 보면 인테리어를 하며 쌓인 내공이 사람들이 사진 찍게 만드는 게 아닐까. 공간 곳곳을 신경써서 만들면 그곳을 찾은 사람이 어디에 앉아도 자신이 특이한 곳에 앉았다고 느끼게 되고 이를 사진에 담고 싶어진다는 얘기다."
 
외식 공간 인테리어만 하는 건가. 
안 "그건 아니다. 최근 호텔에 집중하고 있다. 외식 공간은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시설이다. 서비스가 중심이 되는 시설을 뜻한다. 대부분의 공간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위해 설계되지만 호스피탈리티 시설은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은 일하는 직원을 위한 요소는 10% 에 불과하고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중심이다. 그러나 호스피탈리티 시설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은 호텔도 마찬가지다. 요즘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그룹의 '부티크호텔'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개관 예정인 영화를 주제로 한 호텔을 맡아 작업중이다. 호텔 안엔 외식공간을 비롯해 숙박·서비스·연회장·라이브러리 같은 다양한 공간이 있다. 단위 면적당 투자 비용이 가장 높고 디자인이 가장 응축됐다. 그래서 건축가에겐 많은 업력을 쌓은 후에나 할 수 있는 존재다." 
이태원 테이스팅룸(한남동)을 제외한 매장이 모두 강남 권역에 있던데, 이유가 뭔가. 
김 "우리가 생활하는 반경에서 운영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어야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긴다. 또 강남 지역에선 우리가 만든 메뉴나 공간 등 우리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
잘되는 상권을 찾아간 거 아닌가.
인더스트리얼 컨셉트로 꾸민 '테이스팅룸' 이태원점 외관. [사진 테이스팅룸]

인더스트리얼 컨셉트로 꾸민 '테이스팅룸' 이태원점 외관. [사진 테이스팅룸]

안 "아니다. 가게 입지를 고르는 기준은 디자인이나 메뉴를 개발할 때랑 같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듯, 사람이 없는 곳이 우선이다. 지금은 청담동이나 로데오거리, 한남동이 인기지만 우리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잘되는 상권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멜팅샵이 있는 도산공원 옆 로데오거리는 망했다고들 말했던 곳으로, 2014년엔 미용실과 피자집 정도만 있었다. 지하철 한강진역에서 해밀턴호텔 방면 골목에 있는 이태원 테이스팅룸도 우리가 빌딩을 산 후에 뜨기 시작했다. 맛집으로 알려진 '부자피자'도 이후에 들어왔다. 솔직히 잘되는 상권엔 가능하면 안들어가려고 한다. 남들이 하는 데서 하면 디자이너 같지 않기 때문다. "
 
부부가 함께 일하는데 싸우진 않나. 
안 "각자의 업무가 잘 세팅돼 있다. 메뉴 개발은 온전히 내몫이다. 아내는 중간 단계에 못 끼어든다. 메뉴개발실은 지문인식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아내 지문은 등록조차 안했다. 반대로 나는 술을 못하는데 아내는 뉴욕에서 와인을 공부해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했다.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는 아내가 정한다. "
김 "난 다른 사람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남편의 비전이 맞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의 끼가 부럽다. 내가 못가진 끼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정말 큰 힘이 된다. 나는 평범한 성격이어서 오히려 대중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청개구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생선을 그리라고 하면 다 먹고 뼈만 남은 것을 그리고 사과는 양쪽을 한입씩 베어문 모습을 그렸단다. 예전엔 이런 말을 들으면 '설마 정말 그랬을까'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똑같이 생선을 그린다."
앞으로 계획은. 
안 "새로운 외식 브랜드를 하나씩 계속 만들 거다. 옛날에는 디자인이 메인이고 외식업은 부분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30년 동안 디자인을 하면서 나름 나만의 답도 찾았고 이뤄놓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외식업은 이제 시작하는 거 같다. 매장 6개에 하루에 오는 고객을 합치면 2000명이 넘는다. 왔다가 맛없다고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10여 년 동안 찾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우리 음식을 즐기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보람을 느낀다. 남은 시간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 고 싶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다르고 특이한 메뉴를 찾아내는 거니까. "


송정 기자asitwere@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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