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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클릭] 책상·의자 팔려고 재활용센터 문의했더니 “안 사요”

1 이 기사는 2017-02-08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 구청 재활용센터 있으나 마나

 
강남구 현대아파트 단지에 침대 매트리스 등이 버려진 모습. 구청 재활용센터가 있지만 구민 대부분이 수수료를 내고 버린다. 센터의 존재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센터 측이 워낙 선별해서 수거하기 때문이다.

강남구 현대아파트 단지에 침대 매트리스 등이 버려진 모습. 구청 재활용센터가 있지만 구민 대부분이 수수료를 내고 버린다. 센터의 존재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센터 측이 워낙 선별해서 수거하기 때문이다.



재판매 쉬운 품목만 수거…홍보도 미흡
센터 “유행 변해 쌓아둔 제품 처치 곤란”
멀쩡한 물건 어쩔 수 없이 돈 내고 폐기



냉장고·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이나 장농·소파 등 대형 가구는 ‘버리는 것도 일’이다. 대형 폐기물을 수집하고 운반하는 데 드는 비용을 버리는 사람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1994년부터 총 32개의 재활용센터를 지정해 자원 재활용을 유도하고 있다. 버리면서도 돈을 내야 하는 대형 폐기물을 ‘돈 받고’ 팔 수 있도록 각 구청 차원에서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런데 구민들은 여전히 돈 내고 대형폐기물을 버린다. 센터 역시 매입한 물건을 되 팔지 못하고 쌓아 놓다 결국 쓰레기로 폐기하는 경우가 잦다. 구민도 업체도 웃지 못하는 재활용센터 운영 실태를 강남구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간판에 ‘강남구’라는 표시가 있지만 구청 재활용센터는 사실상 사설업체나 마찬가지다. [사진 강남구청]

간판에 ‘강남구’라는 표시가 있지만 구청 재활용센터는 사실상 사설업체나 마찬가지다. [사진 강남구청]


설 연휴 직후인 1월 31일 오후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각 동 경비실 앞에 설치된 쓰레기 분리수거 공간은 연휴 기간 동안 배출된 쓰레기로 가득했다. 종이·플라스틱·캔 등 종류별로 포대가 마련된 분리수거장은 대형 폐기물 배출 장소이기도 하다. 각 가정에서 버려진 책장·소파·매트리스·선풍기·청소기 등이 분리수거장 울타리 옆이나 인근 화단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대형폐기물 배출신고서, 일명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쓰고 버린 물건들이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폐기물관리 관리조례’에 따라 정해진 대형폐기물 수집·운반 수수료를 내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단지 내 대형 폐기물이 일정량 모이면 아파트 경비원이 지정된 폐기물 업체에 연락한다. 약 이틀에 한번 꼴로 수거가 이뤄진다고 했다.

버려진 가전제품의 작동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책장이나 매트리스는 육안으로 봤을 때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렇게 스티커가 붙은 대형 폐기물이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재활용센터로 보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재활용센터 직원이 우연히 물건을 발견하고 주워가지 않는 이상, 일단 스티커가 붙으면 폐기물 처리 대행업체에서 운반 편의를 위해 부순 후 수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청 재활용센터가 매입한 중고상품들. [사진 강남구청]

구청 재활용센터가 매입한 중고상품들. [사진 강남구청]


서울시 각 구청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활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가정용·업소용 가전제품, 생활가구, 사무용품 등을 중고로 사고파는 곳이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구청 직영으로 운영했고, 2006년 이후로는 지정 또는 입찰 과정을 거쳐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약 56만 명이 거주하는 강남구에는 구청 지정 재활용센터가 2곳 있다. 25개구 중 복수의 재활용센터가 지정된 구는 강남구를 비롯 강서구(4개), 노원구, 동대문구(3개), 영등포구, 금천구까지 총 6곳이다. 법률은 자원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인구 20만명 당 센터를 1개씩 지정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 자치구 재활용센터를 한 데 모아 볼 수 있는 통합 홈페이지도 오픈했다.

이렇게 각 자치구가 재활용 활성화에 나선 지 20년이 지났지만 역할과 존재감은 미미하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구청 재활용센터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관리팀장은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재활용센터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관리소에서 재활용을 권고하거나 안내하고 있지는 않다”며 “구청 재활용센터의 존재를 몰랐다”고 말했다. 주부 신모(대치동)씨는 “버릴 가구가 생기면 경비실 앞에 내놓고 몇 만원씩 내는 식으로 처리해왔다”면서 “자원을 사고파는 재활용센터에 자치단체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에 강남구청 측은 “원칙은 배출자가 직접 재활용센터에 연락해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일이 권고하거나 대행할 의무는 없다”면서도 “센터 이용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홍보 부족만이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구청 재활용센터를 알게 되더라도 ‘퇴짜’를 맞기 일쑤다. 주부 조혜영(46·역삼동 )씨는 2014년 아이 방을 정리하며 재활용센터에 물건을 보내려다 거절당했다. 책장·책상·의자·서랍장 등 가구와 어린이 서적을 한꺼번에 팔겠다고 재활용센터 두 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취급하는 품목이 아니다”라며 전화상으로 거절했다. 조씨는 “스티커를 붙여서 버릴 생각을 하니 비용도 만만찮고 운반할 엄두가 나지 않아 재활용센터를 알아봤던 것”이라며 “구청에서 관리한다고 해서 좀 더 편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재활용품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려는 절차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결국 15만원을 들여 사설 폐기업체를 불러 일을 처리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은 “구민이 요청하면 반드시 찾아가서 매입 가불가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수단은 없다”면서 “무작정 매입했다가 재판매가 되지 않으면 센터 측에서도 보관비 부담만 커지기 때문에 유가성, 환금성이 있는 품목만 수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품을 선택적으로 매입한다는 ‘장삿속’ 논란에 대해 구청 재활용센터 측도 난처함을 토로했다. 논현동에서 20년째 ‘리싸이클세상’을 운영해온 박양재(60) 대표는 “지자체에서 재활용을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인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가게 간판에 강남구 마크를 붙인 것 말고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신뢰성을 높게 인정받기 위해 구청 마크를 달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결국 스스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사설업체라는 의미다. 박씨는 “자비를 들여 지역방송에 TV광고도 내보내고 있지만 요즘 재활용품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어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매입할 때부터 판매 여부를 꼼꼼하게 저울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재활용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중고니까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촌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고가 가구는 원 구매 가격의 10%대까지 할인해도 잘 팔리지 않아 매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와 갈등이 생기면 구청으로 민원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지만 판매 문의 10건 중 3~4건이 재판매가 어려운 물건이라 선택적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강남구가 2015년 수집한 재활용품은 총 7만 1096건, 판매한 재활용품은 6만 1984건이다. 2016년 상반기에는 3만 5885건을 매입해 3만 1254건을 팔았다. 판매량에는 기존에 매입해둔 물건까지 포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수 천 개의 재활용품이 창고 자리만 차지하거나 쓰레기로 폐기되는 셈이다. 강남구청 청소행정과는 “재활용센터로 들어오는 가구·가전들은 대부분 무게가 무겁고 덩치가 커서 보관이 어려운데 강남 지가가 비싸다보니 개인사업자들이 장소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논현역 앞 큰 길가 4층 건물에 자리 잡았던 리싸이클세상은 매출 감소로 인해 2년 전 언주역 인근 구석진 위치로 매장을 옮겼다. 최근 들어서는 의도적으로 매입량을 줄여 3층까지만 사용하고 있다. 구청은 “요즘은 가전제품 발달이나 인테리어 유행 변화가 빨라 중고품 수요가 크게 떨어진 상태”라면서 “구청 직영이 아니기 때문에 할당된 예산이 없어 자치단체 차원에서 해결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부터 재활용센터 홍보를 활성화하고 환경부 등 상급기관에 보조금 지원을 건의하는 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