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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트럼프를 화나게 한 그를 해부하다…완벽주의자 톰 포드

1 이 기사는 2017-02-01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 감독, 완벽주의자 톰 포드
 
최근 개봉작 ‘녹터널 애니멀스’ 촬영 현장에서의 톰 포드 감독.

최근 개봉작 ‘녹터널 애니멀스’ 촬영 현장에서의 톰 포드 감독.


패션 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할 때 1:1 단독 인터뷰를 끝내고 ‘지금 일을 그만둬도 한이 없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를 만났을 때다. 그는 현대 패션사를 말할 때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디자이너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여전히 여러 화제를 몰고 다니지만 최근엔 두 가지 이슈가 있다. 하나는 그가 감독한 최신작 ‘녹터널 애니멀즈’, 다른 하나는 연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관련해서다.
 
 
 


트럼프와 얽힌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논쟁은 톰 포드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며칠 전 엘르닷컴과 한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요청이 있다면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에게 당신 옷을 입힐 것인가, 하는 질문에 톰 포드는 “몇 년 전 멜라니아가 내 옷을 입겠다는 뜻을 전해왔을 때 거절했는데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톰 포드 컬렉션 이미지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톰 포드 컬렉션은 굉장히 비싼 브랜드라 이런 옷을 퍼스트레이디가 입는 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퍼스트 레이디라면 미국인 대다수가 입을 수 있는 가격대 의상을 입는 게 맞다”는 이유다. 톰 포드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게다가 내가 만드는 옷은 미국에서 생산하지도 않는다. 전부 ‘메이드 인 이탈리아’다. 내가 (트럼프의 대선 경쟁자였던) 힐러리에게 투표한 것과 상관없다. 단지 톰 포드 컬렉션은 퍼스트 레이디가 입기에 과도하게 비싸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를 꿈꿨던 톰 포드는 모델 뺨치는 외모와 스타일을 유지하며 최고의 셀럽으로 주목 받고 있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를 꿈꿨던 톰 포드는 모델 뺨치는 외모와 스타일을 유지하며 최고의 셀럽으로 주목 받고 있다.


톰 포드 얘기를 전해들은 트럼프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한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그에게 의상을 부탁한 적 없다”며 “그나 그의 디자인을 좋아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좋아할 리 없다”고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호텔 재벌 스티브 윈 얘기를 꺼냈다. “윈이 톰 포드의 부적절한 발언을 듣자마자 자신의 라스베이거스 호텔 매장에 있던 그의 옷을 호텔 창밖으로 내던졌다고 하더라.”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선 톰 포드의 ‘옷’을 판매하고 있지는 않고 톰 포드 브랜드 화장품과 선글라스 매장이 있었다. 실제로 톰 포드 인터뷰 후 곧바로 호텔 측이 판매를 중지했다고 한다. 톰 포드의 소신 발언에 비해 트럼프의 대응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하기에 한참 격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열연 중인 배우 에이미 아담즈.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열연 중인 배우 에이미 아담즈.


이렇게 국가적 구설수에 오른 톰 포드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로도 큰 화제를 몰고 있다. 제7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줬고 영국의 아카데미상격인 BAFTA 어워드 9개 부문, 골든 글로브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오는 2월 26일에 있을 제89회 아카데미 어워드 1개 부문에 노미네이션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패션 디자이너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후(2004년 그는 맹활약하던 브랜드 구찌를 떠났다) 그가 도전한 건 전혀 새로운 분야인 영화였다. 첫 번째 영화 ‘싱글맨(2009)’으로 감독으로서의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전까지 그저 중년 아저씨에 가까웠던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이 시대의 스타일을 갖춘 신사’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며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로 환골탈태한 것도 알고보면 이 영화 덕분이다. 물론 패션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의 섬세한 작전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남자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과 대화 중인 톰 포드(왼쪽).

촬영 현장에서 남자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과 대화 중인 톰 포드(왼쪽).


영화 프레임 하나하나마다 움직이는 화보를 보는 듯 했던 ‘싱글맨’ 이후 나온 최신작 ‘녹터널 애니멀스’ 역시 관객들은 ‘비주얼 충격’에 꽂히는 분위기다. 영화 음악 전문가인 에이블 코레니오스키(Abel Koreniowski)의 클래식 선율과 함께 붉은 커튼을 배경으로 거대한 몸집의 여인들이 전라의 모습으로 춤추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시작부터 관객을 시청각적으로 압도하는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캐스팅 역시 톰 포드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주연 배우인 제이크 질렌할과 에이미 아담즈는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이요 패션계에서 유독 사랑받는 ‘스타일 있는’ 배우들이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애런 존슨은 영국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포토그래퍼로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연출한 영화감독 샘 테일러 우드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영화 ‘존 레논 비긴즈: 노 웨어 보이(2009)’ 촬영 당시 만난 두 사람의 나이는 애런 존슨 19세, 샘 테일러 우드 42세였다. 흔치 않은 연상연하 커플이라 영국 내에서도 엄청난 화제가 됐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톰 포드가 선보인 마지막 컬렉션인 2004 F/W 의상. 언제나처럼 그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컨셉트는 ‘섹시’였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톰 포드가 선보인 마지막 컬렉션인 2004 F/W 의상. 언제나처럼 그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컨셉트는 ‘섹시’였다.


다시 톰 포드로 돌아가 보자. 대중이 그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점 때문일 터다. 1990년 파산 지경으로 몰락해가던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는 톰 포드를 디자이너로 영입한 지 불과 3년 만에 황금알을 낳는 가장 핫한 패션 하우스가 됐다. 처음부터 톰 포드를 하우스 전체의 디자이너로 모셔온 것도 아니었다. 남성 액세서리 책임자에서 시작해 점차 여성복까지 맡으며 차근차근 입지를 굳혔고, 1994년 구찌 전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꿰찼다. 그해 선보인 복고풍의 퇴폐미를 발산하는 컬러풀 새틴 블라우스와 자수가 수놓인 힙스터 청바지 룩 하나로 그는 패션의 현대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톰 포드가 발표한 ‘1994년 구찌 컬렉션’은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올이 파리에서 선보인 ‘뉴 룩’에 버금가는 패션사의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후 패션계의 오래된 하우스 브랜드들은 너도 나도 구찌처럼 젊은 디자이너를 물색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앉히기 시작했으니 톰 포드는 ‘패션계의 왕자’로서 10년 간 스포트라이트를 즐길만한 자격이 있었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톰 포드가 선보인 마지막 컬렉션인 2004 F/W 의상. 언제나처럼 그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컨셉트는 ‘섹시’였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톰 포드가 선보인 마지막 컬렉션인 2004 F/W 의상. 언제나처럼 그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컨셉트는 ‘섹시’였다.


구찌에 이어 이브 생 로랑 컬렉션까지 도맡던 그가 돌연 구찌 하우스를 떠난 건 2004년이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처음엔 뷰티 글로벌 기업 중 하나인 에스티 로더와 손잡고 톰 포드 향수 브랜드를 세상에 내놨다. 이어서 선글라스, 메이크업 라인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멜라니아는 결국 입지 못했던(멜라니아는 취임식에 랄프 로렌을 입었다) 패션 브랜드 ‘톰 포드’ 역시 줄리앤 무어, 기네스 팰트로, 비욘세, 조니 뎁, 라이언 고슬링, 윌 스미스, 톰 행크스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을 팬으로 거느리고 있다.
 
톰 포드 2016 S/S 여성복 컬렉션.

톰 포드 2016 S/S 여성복 컬렉션.


몇 해 전 중국 상하이에서 했던 밀도 있는 인터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보통 이 정도 ‘급’의 인물이면 홍보 담당자를 통해 사전 질문지를 받는다. 당일에도 관계자들이 함께 배석한 상황에서 철저히 보호를 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하지만 톰 포드는 주변을 전부 물리고 기자에게 온전히 1시간을 통째로 완벽하게 내주었다. 그렇게 단 둘이 1시간이나 대화를 나눠보니 톰 포드가 치밀한 완벽주의자이자 합리적인 달변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예술가라기보다 능숙한 비즈니스맨 같아서 놀라웠다. 어떤 불편한 질문에도 솔직하고 위트있게 응수했으며 틈이란 걸 발견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직접 얘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현재의 영화감독 톰 포드 역시 옷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치밀한 완벽주의로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션업계를 리드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는 대중보다 딱 ‘반 보’ 앞선 걸음으로 영화의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를 정확하고 치밀하게, 적중률 있게 조율하고 있을 것이다.

커리어는 물론 사생활에서조차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파파라치에게 찍혀본 적 없는(사진에 찍힐 때는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 완벽남 톰 포드에게 미국의 신임 대통령은 부족해 보인다. 넥타이 길이도 제대로 못맞추는 트럼프와 톰 포드가 정답게 지낼 일도 없을 것 같다. 혹여 톰 포드 개인의 예술 작업과 비즈니스에 별 탈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톰 포드
 

톰 포드 1961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출생,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건축학 전공. 이탈리아에서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열정을 키우던 중 1990년 구찌 여성복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이후 모든 디자인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도산 직전까지 갔던 브랜드를 젊고 핫한 브랜드로 부활시켰다. 1980년대 화려한 디스코 문화와 관능미를 키워드로 한 그의 디자인은 90년대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구찌를 나온 후 본인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 한편 오랜 꿈이었던 영화계에 도전했다.


글=강주연 JTBC 플러스 엔터트렌드 채널본부장,
정리=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UPI 코리아, 톰포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