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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창고] "음악이 소란한 소통이라면, 글은 느리고 고요한 소통"

1 이 기사는 2017-01-25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책과 사람

『블로노트』 펴낸 가수 타블로
지난 18일 한남동의 한 찻집에서 한창 9집 앨범 작업 중인 가수 타블로를 만났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끝인사를 대신했던 문장들로 『블로노트』를 만들면서 종종 들렀던 곳이다. 최정동 기자

지난 18일 한남동의 한 찻집에서 한창 9집 앨범 작업 중인 가수 타블로를 만났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끝인사를 대신했던 문장들로 『블로노트』를 만들면서 종종 들렀던 곳이다. 최정동 기자



사각사각. 두 시간동안 진행되던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MBC FM4U)’가 맺음말(클로징 멘트)을 할 시간이 되면 종이에 스치는 연필소리가 나지막이 깔린다.

그 소리를 배경으로 DJ인 가수 타블로(37)가 짧은 문장 하나를 무심히 읽는다. 지난해 가을 출간 소식을 알린 『블로노트』는 이렇게 매일 방송됐던 라디오 속 동명의 코너 ‘블로노트’의 글귀를 한데 모아 만든 책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 생각의 씨앗을 품은 글귀들이다.


 
라디오 코너였던 ‘블로노트’ 인기가 상당했다고 들었다.
“책이 나오게 된 것도 청취자들의 요청 때문이다. 매일 라디오를 진행(2008년 4월부터 2009년 6월, 2014년 4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두 시즌)하면서 클로징 멘트(맺음말)를 좀 다르게 해보자 해서 만든 기획코너였다. 노트에 글을 쓰듯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자는 취지로 진행됐는데, 그 글귀들을 모아서 책으로 갖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청취자들의 요청이 많았다.”
'매일매일 즉흥적으로 문장을 떠올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맞다. 책으로 엮으려니 쓸 수 없는 문장들이 많더라. 결국 1/3정도만 당시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수정하거나 아예 새로 썼다. ‘블로노트’ 멘트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연필소리 배경음이 들리면 그때서야 아무 말이나 던진 적도 있었으니까. ‘록(Rock)!’ 한마디 하고 끝낸 적도 있다. 물론 책에는 안 실렸다. 하하.”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글귀를 읽는다는 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길이는 짧아도 생각의 꼬리가 긴 문장들을 쓰려고 노력했다. 어른이 될수록 대화 상대가 적어진다. 시간이 부족하고, 만나기도 힘드니까. 가끔은 가볍게라도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어?’라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이처럼 대화가 고플 때 나는 책을 읽는다. 『블로노트』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
수록된 것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은.
“그때그때 와 닿는 문장이 다르다. 오늘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은 상상을 살찌워주기 위해 일어난다(p.83)’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게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꾸준히 자주 일어났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로 인해 상상 가능한 일과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또 당시에는 상처라고 생각했던 게 어느새 내가 자라고 성장한 증거, 나이테가 돼 있더라. 갑자기 키가 크거나 몸이 커지면 살이 트지 않나. 갑자기 내 인생에 끼어든 그 자국이 흡사 상처 같지만, 실제론 성장한 흔적이듯 말이다.”
책속에서 영화감독 박찬욱, 빅뱅 권지용 등이 쓴 손 글씨가 눈에 띄던데. 책 표지 타이틀은 딸 하루의 손 글씨다.
“‘블로노트’ 매니어들 중에는 그날의 문장을 손 글씨로 적어서 사진을 찍고 라디오 홈페이지에 올리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블로노트’를 떠올리면 손 글씨부터 생각난다는 사람들도 많다. 책 전체를 모두 손 글씨로 만들까 하다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글귀를 직접 손 글씨로 써보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대신 몇몇 문장은 그 의미를 더 잘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손 글씨를 부탁했다. 예를 들어 ‘다들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럼 두 시간만 살 건가(p.24)’라는 글귀는 박찬욱 감독에게 부탁했다. 표지 글씨는 내 손 글씨가 별로 예쁘지 않아서 딸에게 부탁했던 거다. 하하.”
쉽게 읽힌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싶다.
“모든 책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을 필요가 있을까. 한 번은 만화책을 읽다가 ‘뭐하고 있냐’는 질문에 ‘책 읽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상대방이 ‘그건 책이 아니라 만화책’이라고 지적하길래 충격을 받았다. 만화책과 책을 구별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글도 있고 그림도 있으니 만화책이 더 낫다는 생각도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장엄하고 긴 서사가 필요한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광고카피나 한 컷 만화처럼 간결한 글이 뜻밖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가 문 앞에 쓰인 낙서 한마디 때문에 무릎을 쳐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지 않나.”
짧은 글이 통하는 시대이긴 하다. SNS 시인들도 등장했다.
“2008년도에 처음 ‘블로노트’ 코너를 진행할 때만 해도 SNS가 지금처럼 흥하지 않았다. 지금은 140자 단문으로 소통하는 트위터를 비롯해 짧은 글로 생각을 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어떻게 보면 ‘블로노트’는 시류를 아주 잘 탄 코너였다. 그렇다고 『블로노트』 속 글귀를 SNS 시인(SNS를 통해 짧은 문장의 창작시를 공개하는 시인)들의 작품과 비교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서점에서 그래도 어딘가에는 꽂혀야 하니까 ‘시/에세이’로 분류된 것뿐이지, 진짜 시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친구한테 쪽지를 주듯 짧은 생각을 적었다.”
한창 9집 음반 작업 중이라고 들었다. 글을 쓸 때와 노래 가사를 쓸 때는 뭐가 다른가.
“내 생각을 전한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비슷하다. 다만 가사는 내 얘기를 있는 그대로 쓰기보다 간접적으로 묻어나는 형태가 되도록 노력한다. 영화감독들이 자전적인 얘기로 영화를 만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향기가 묻어나듯 말이다.”
지난해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평소 가사를 쓸 때 문학성을 고려하는 편인가.
“노랫말은 때로 시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반드시 모든 노래 가사가 ‘시’여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문학적인 가사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경우, 문학성에 초점을 두고 쓰진 않지만 가사를 쓸 때의 마음가짐은 시를 쓸 때와 비슷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와 사랑에 빠졌고, 어쩌다보니 음악을 하게 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생각이 녹아든 가사를 쓰는 것, 그게 내 스타일이다.”
음악 대신 글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건 어떤 느낌인가.
“글이 느리고 고요한 소통이라면 음악은 빠르고 소란한 소통 같다. 음반을 발표하면 아주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고 굉장히 빠르게 소비되는 데 반해, 책은 서서히 하지만 꽤 오랫동안 잔잔히 반응이 지속된다. 청자든 독자든, 음악을 듣고 글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타블로가 추천하는 에세이 4권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이성복 저, 1만2800원.

배우 고현정씨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들고 다니면서 어떤 페이지든 무작위로 펴서 읽어도 좋은 잠언집(삶의 지혜를 짧은 문장들로 소개한 책)이다. 일상에 자리한 슬픔과 고통의 근원을 이성복 시인이 섬세한 언어로 표현했다. 짧은 글의 매력을 보여주는 정석 같은 책이다.




 

안으로 멀리뛰기
북노마드  이병률, 윤동희 저, 1만5000원.

저자인 이병률 시인과는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진행 당시 오프닝 원고를 써줬던 인연이 있다. 그와 출판사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의 문답을 엮은 대화집 형식의 책은 시집과 산문집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든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인생 선배인 바텐더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짙은 여운을 준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그책 이석원 저, 1만3000원.

여느 에세이처럼 짧은 에피소드가 나열된 방식이 아니라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가 담긴 산문집이다. 잘 썼고, 또 잘 읽힌다. 정신없이 빠져서 읽다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적당한 긴장감도 준다. 작가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어쩐지 친구가 해주는 말을 듣고 있는 듯 편안한 기분이 든다.





 

나 안 괜찮아
현암사 실키 저, 1만5000원.

삶의 다층적인 면을 시니컬한 유머로 그려낸 그림 에세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페이스북에서 ‘실키두들(silkidoodle)’이라는 아이디로 한 컷 만화를 연재할 때였다. 작가의 생각이 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지인을 통해 그가 내 팬이라는 걸 알았다. 역시나, 그와 나는 통하는 것이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