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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가족은 같은 목적지 향해 가는 사람들, 밖보다 집에서 더 잘해야죠

1 이 기사는 2016-08-31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 배우 차태현 부모, 차재완·최수민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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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병’ 없는 배우 차태현의 롤모델은 부모 차재완(왼쪽)·최수민씨다. 동양방송(TBC) 성우 선후배로 만난 부부는 요즘도 집앞 여의도공원 산책을 즐길 때면 서로의 손을 꼭 잡는다. [사진 김경록 기자]


안티는 고사하고 흔한 악플조차 안달리는 연예인. 영화·드라마·예능을 넘나들며 활약중인 차태현(40) 얘기다. 1995년 KBS 수퍼탤런트로 데뷔한 후 부침 심한 연예계에서 2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난기와 유머 감각, 강남 8학군 출신이라는 이력만 보면 고생 한 번 안해본 부잣집 도련님 같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6년간 친척집 방 한 칸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내야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차태현은 사랑받는 배우로, 형 지현(42)씨는 영화 ‘끝까지 간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성공시킨 제작자로 잘 성장했다. 동갑내기 부부 차재완(72)씨와 최수민씨가 어떤 가르침을 줬길래 가능했을까.


TBC 성우 커플, 바쁜 아내 대신해 남편이 육아 맡아
공부 못해도 잔소리 한 번 안해…“너희 믿는다” 신뢰
가계부 보여주며 경제 교육, 성공에 조급해 마라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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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결혼식 당시 사진. 가난했던 부부는 예물로 성경책만 주고받았다.


개그맨을 웃길만큼 뛰어난 차태현의 유머 감각은 아버지를 꼭 닮았다. 1967년 동양방송(TBC) 공채 3기 성우로 입사한 차씨 주변은 늘 동료들로 북적였다. 충청도 특유의 느리고 구수한 말투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얘깃거리로 당시 성우실엔 ‘차재완 아워(hour)’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년 후배 최수민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렵게 학업을 마친 최씨 눈엔 차씨의 여유와 유머가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차씨는 6개월만에 겨우 최씨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년 여 연애 끝에 73년 6월 차씨의 충남 당진 시골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차씨의 성우 동기인 송도순씨가 신부 화장을 해줬을 뿐 아니라 오빠의 승용차까지 빌려와 결혼식을 도왔다. 자동차 보기 힘들던 시골 마을에선 서울에서 출세했다며 시끌벅쩍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난한 부부였다.신혼여행조차 갈 수 없어 예물로 성경책 한권을 주고 받았다. 맞벌이로 차곡차곡 돈을 모은 덕분에 한 달 7000원짜리 월세집에서 3년 만에 응암동 40㎡(12평)짜리 내집 마련에 성공했다. 그사이 큰 아들 지현과 작은 아들 태현을 2년 터울로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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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는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사라졌다. 서울 순화동 TBC 스튜디오에서 성우로 일할 당시 최수민(왼쪽)·차재완.


80년 언론 통폐합으로 부부는 KBS로 적을 옮겼다. 차씨는 이후 음향 감독으로 전직했고 최씨는 성우로 승승장구했다. ‘영심이’‘떠돌이 까치’‘요리왕 비룡’ 등 TV 인기 만화 속 주인공 목소리를 늘 도맡았다. 프리랜서 선언 후 수입은 남편의 3배가 넘었다.

바쁜 아내를 대신해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를 맡았다. 돌이켜보면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두 아들은 성격이 참 다르다. 큰 아들 지현은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셌다. 씀씀이도 큰 편이어서 돈이 생기는대로 써버렸다. 반대로 작은 아들 태현은 내성적이고 순종적이었다. 원하는 걸 사고 싶으면 스스로 용돈을 모았다. 덜컥 사버리거나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번 돈으로 힘겹게 학업을 마친 최씨는 씀씀이가 크고 고집 센 큰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씨는 “나는 지현이를, 지현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둘 다 힘들었다. 오죽하면 남편이 나보고 팥쥐엄마(계모) 같다고 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반면 차씨는 늘 큰 아들을 달래고 보듬어 안았다. 최씨는 당시엔 남편이 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서 좋은 역할만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하지만 시간이 이젠 늘 고마워한다. 최씨는 “평온하고 여유로운 시댁 식구들 성격을 닮아서인지 남편은 화내는 법이 없다”며 “엄마뿐 아니라 아빠까지 아이를 혼내면 사춘기 아이가 엇나갔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은 몇 가지 확고한 자녀 교육 원칙은 공유한다. 그 중 하나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다. 거짓말이나 도둑질만 아니라면 느슨한 울타리를 정해두고, 울타리를 벗어나려 할 때만 제재하는 식이다. 한 번도 공부 못한다고 혼내지 않았다. 차씨는 “아이를 부모 마음대로 바꾸려는 건 유리잔을 맥주병으로 만들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른 집 자녀와의 비교도 금물이다. 일하며 성공한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비교하지 않아서 언제나 행복했으니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한 것이다. 다만 항상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큰 아들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둘째가 담배 피운다고 학교에서 호출이 왔을 때 부부는 먼저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그냥 아이를 믿었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똑같은 문제는 다시 벌어지지 않았다. 차태현은 아직까지 담배를 안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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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이 1999년 방송국 연말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뒤 찍은 가족사진. 형 지현·아버지 차재완·태현·어머니 최수민(맨 위부터 시계방향).


열심히 모아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79년 차씨가 형제들과 함께 시작한 교육용 비디오 사업이 잘 안풀리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잘 나가는 성우였지만 최씨가 밤새 영화 더빙을 해도 사업자금으로 쓰이느라 돈은 구경할 수 없었다. 6년 만인 84년 사업을 접을 때 부부 앞엔 3억원의 빚만 남았다. 당시 5000만원이었던 집은 물론 세간살림까지 모두 팔았지만 월세방 한 칸 얻을 돈조차 남지 않았다. 한 지인은 걱정해준답시고 최씨에게 “이혼 안하냐”고 물었지만 그는 오히려 “아는 영화감독이 5억원의 빚을 지고 미국으로 갔는데 그걸 보면 우린 2억원을 번 것 아니냐”며 남편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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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첫사랑 최석은씨와 결혼한 차태현.


갈 곳 없던 부부는 개포동 살던 차씨의 둘째 형 집이었다. 철도 공무원이었던 형은 방 2개짜리 69㎡(21평) 공무원 아파트에 당첨돼 두 자녀와 살고 있었는데, 여기에 차씨 네 식구가 얹혀 산 것이다. 형 부부는 안방을 차씨 부부에게 내줬다. 최씨는 “바쁜 날 대신해 형님이 우리 식구 살림까지 다 해줬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만큼 편하게 지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큰 아들이 고2 때인 91년, 대출 받아 서초동 은하아파트를 사면서 형님 집을 떠났다. 최씨는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76㎡(23평) 은하아파트가 우리에겐 마치 성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사업 실패가 가정 불화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

(차재완) “부부와 가족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 어려울 때 싸우면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만 지체될 뿐이다. 손잡고 함께 달려야 한다. 천천히 걸을 순 있지만 싸우느라 시간을 버려선 안된다.”

-빚만 남긴 배우자를 원망하지 않은 이유

(최수민) “돈을 잃었는데 가족 간 화목까지 잃어버리면 상처가 더 크지 않겠나. 가만 있어도 힘든데 싸우기까지 하면 더 힘들다. 그래서 이혼은 생각지도 않았다. 남편 사업이 실패했을 땐 정말 힘들었다. 빚에 치어 잠 못자고 밤새 녹음하다 힘들어 쓰러질 거 같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죽고 싶어 교회 예배 시간에 펑펑 울고 나와보면 남편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더라.”

-망한 집 부부의 자녀 경제교육법

(차재완) “아내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계부를 보여주며 수입과 지출을 제대로 알려 줬다. 빚을 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돈을 아껴쓰라는 말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집안 형편을 알아서인지 아이들은 형편에 벗어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사실 돈 문제 아니라 우리 가족은 모든 주제에 대해 대화를 충분히 했다. 아무리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라도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강남키즈 아이들, 성적에 목 매지 않은 이유

(최수민) “솔직히 두 아들 모두 공부를 잘 못했다. 그렇다고 공부 하라고 잔소리 한 적이 없다.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라고 격려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없어서인지 아이들은 즐겁게 컸고 좋아하는 일을 잘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연극영화과를 지원한 큰 아들을 위해 남편은 음악을, 나는 발성과 연기를 가르쳤다. 아들 태현이 입시 때도 마찬가지였다.”

-워킹맘에게 주는 조언

(최수민) “지금이야 출산 휴가 3개월은 기본이고 육아휴직까지 있지만 나는 아이 낳고 한 달만에 바로 회사에 복귀해야 했다. 녹음 스케줄을 겨우 조절해 큰 아들 유치원 소풍을 따라갔는데 아들이 대뜸 ‘엄마가 언제 나랑 함께 있었느냐’고 하더라. 마음이 아팠지만 일을 그만둘 순 없었다. 대신 시간이 날 때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가족은 나에게 힘을 주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내가 열심히 가꿔야 할 꽃밭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저 즐기려고 꽃을 꺽으려고만 하면 꽃밭은 엉망이 된다. 평소에 최선을 다해 가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연예인병 없는 연예인 아들을 둔 비결

(최수민) “수퍼탤런트 입상 후 태현이는 금방 뜰 줄 알고 서울예전을 휴학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부르지 않았다. 조급해 했다. 그때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줬다. 비중이 많든 적든 대사가 있든 없든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이나 나나 방송 쪽에서 일하며 수많은 스타가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걸 봐왔기 때문에 태현이가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길 바랐다. 무명으로 보낸 4년의 시간이 아들을 교만하지 않고 단단하게 만든 것 같다.”

-갈등 없는 형제로 키운 비결

(최수민) “큰 아들 지현이는 동네 골목대장이었고 동생 태현이는 그런 형을 따라다녔다. 태현이가 배우로 성공한 후 온 가족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려 서운했을 거다. 그런데도 톱스타로서의 동생을 인정하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성공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얘기를 늘 해줬다. 다행히 이젠 제작한 영화가 잇따라 성공해 칸 영화제에까지 초청됐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법(※차재완씨는 KBS근무 당시 화장실 수건을 빨아놓은 일화로 유명)

(차재완) “정년 퇴직까지 37년간 회사를 다닌 덕분에 자녀를 키울 수 있었다. 둘째 태현이가 데뷔한 곳도 KBS다. 늘 고마운 마음이었다. 어느날 화장실에 갔는데 축축하고 더러워진 수건이 3일 내내 그대로인 걸 알게 됐다. 몰래 가져와 빨아서 갖다놨다. 깨끗한 수건을 보니 뿌듯해, 아예 요일별로 색이 다른 수건을 2장씩, 총 12장을 준비해 매일매일 새 수건을 걸었다.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부부 사이가 유난히 좋은 비결

(차재완) “태현이는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했다. 솔직히 의외였다. 태현이에게 물어보니 처음 만난 날 여러 명의 사람과 같이 있었는데 며느리만 선명하게 보이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더라. 야무진 며느리가 내조 잘하고 세 아이 잘 키우고 있으니 너무 좋다. 늘 서로 존중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아이들도 배운 게 있을 거다. 부부는 서로에게 더 잘해야 한다. 애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집에선 못하고 밖에 나와 잘난체 하는 것만큼 못난 사람이 없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 집에서 더 잘해야 한다. 가족이 편하다고 감정을 모두 쏟아부어서는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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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완씨가 지현·태현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 쓴 편지.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절절히 당부하고 있다. [사진 차재완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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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송정 기자asitwere@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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