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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해방촌 저 높은 곳까지 항아리 배달했던 때가 그립지

1 이 기사는 2016-07-06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해방촌 입구 50년 옹기가게 주인 신연근씨
기사 이미지

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항아리 하나로 6남매를 키웠지, 건강이 허락하면 끝까지 지키고 싶어.”

최근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이태원 옆 해방촌 입구. 담벼락을 따라 족히 100개가 넘는 옹기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크기와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신기한 듯 옹기를 가리키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수많은 옹기를 따라 걷다 보면 세월이 느껴지는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띈다. 1967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한신옹기’다.

한신옹기의 대표 신연근(81)씨가 옹기와 함께한 세월은 올해로 59년째다. 찾아온 손님을 헛걸음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1년 365일 가게 문을 연다. 신씨는 인터뷰 도중 찾아온 외국인 손님 두 명에게도 능수능란하게 6개의 옹기를 판매했다.

“디스카운트? 오케이! 파이브, 파이브.(5000원 깎아 주겠다는 뜻) 땡큐! 다음에 또 와요.”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외국인 손님과 당당하게 흥정하는 할머니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이태원이라는 지역 특성상 한국인 손님보다 기념품을 사러 오는 외국인 손님이 더 많다고 한다.

옹기 하나로 50여 년간 해방촌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지금 해방촌의 가게 터를 자리 잡기까지 리어카를 끌며 행상을 했다. 고구마와 두부로 끼니를 연명하며 10년 만에 겨우 터를 잡았지만, 돈이 없어 집을 짓지 못했다. “고생했던 그 세월을 어찌 다 말로 하겠어.” 판잣집이 스무 번도 넘게 철거를 당하자 6남매와 함께 땅굴을 파 살았다는 할머니는 자식들 생각에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혹독했던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고 했다. “6남매가 반찬 투정 않고 이렇게 착실하고 반듯하게 자란 것도 감사하고, 맑은 정신으로 아직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지. 이만하면 만족해. 이 정도면 성공했지.”

지난해 여름 신씨는 갑작스레 찾아온 구안와사(안면 신경마비)로 고생을 했다. 아직까지 치료를 받는다는 그의 꿈은 끝까지 가게와 함께하는 것이다. “해방촌 저 높은 곳까지 곳곳을 오가며 항아리를 몇 개씩이나 배달했던 때가 그립지. 내가 건강한 동안은 며느리랑 같이 가게를 지킬 거야”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도자기를 공부하고 있다는 며느리 얘기에 할머니의 얼굴에는 금세 미소가 번졌다.

인터뷰 내내 옹기 가게는 쉴 틈이 없었다. 커피 한잔하고 가는 동네 주민부터 이웃 주민의 택배를 맡기는 택배 기사까지, 30년 넘게 해방촌 반장을 했다는 그의 가게는 마치 그 옛날 동네 사랑방 같았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면 그게 행복이지 뭐 별 게 있나. 와줘서 고마워. 다음에 꼭 또 놀러와.” 할머니는 떠나는 기자의 손에 자두를 쥐여주며 말했다.

만난 사람=김성현 인턴기자 jam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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