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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희망과 긍정의 힘 가르친 400통의 편지

1 이 기사는 2016-07-06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성 교육 전도사,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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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가 서울 부암동 자택 거실에서 40년 전 아버지에게 받은 첫 번째 편지를 꺼내 읽으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아무라도 일시적인, 단시일의 노력은할 수 있는 거다. 어떠한 모임이 있더라도 하루 한두 시간은 책을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야 학자가 되는 법이다”라는 아버지의 당부가 담긴 구절을 읽으며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스스로 “참으로 멍했던 아이”라 기억한다. 꿈도 없었고 공부도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꼴찌를 해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었다. 공부를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도 해본 일이 없다. 중학교 때 유급을 당하고도 신나게 놀기만 하자 아버지가 “두 번은 그러지 마라”고 당부한 게 유년시절 그가 혼난 기억의 전부다. 아이를 성장시킨 건 부모의 다그침이 아닌 삶의 태도였다. 집안은 늘 손님으로 북적였고, 부모님은 누가 찾아와도 진심으로 환대했다. 고관대작이든 동네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든 집에 찾아오는 이는 누구라도 따뜻하게 맞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부모님을 보며 아이는 “인간에게 상하(上下)가 없다” “사람은 모두가 귀하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차가운 기계공학을전공했지만 따뜻한 인성 교육을 강조하며 행복 전도사로 살고 있는 조벽(60) 동국대 석좌교수의 이야기다. 조 교수는 “부모님은 한 번도 나를 앉혀 놓고 이래라저래라 훈계하신 법이 없었다”며 “그분들의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통해 나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고 말한다. 

유급되고 꼴찌해도 한 번도 혼난 적 없어
어른 공경과 친구와 신의 더 강조하셨죠
학비 부담 덜어드리려 공부해 유학까지

인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학습되는 것
잠자기 전 가족과 ‘오늘 다행인 일’ 대화
나빴던 일도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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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아들의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조벽 교수의 부모님의 경험담과 조언들이 가득하다. 아래 사진은 조벽 교수가 결혼하자, 부모님이 며느리인 최성애 박사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는 ‘며느리 보아라’로 시작한다.

머리보다 마음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조 교수는 열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자메이카로 건너가 유년기를 온통 그곳에서 보냈다. 내과의사였던 아버지가 자메이카 정부의 초청을 받아 온 가족이 이주해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 조 교수는 “나는 그때도 역시 멍했다”며 “영어라고는 ABC도 모른 채 비행기에 올랐고, 외국에 나가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니 그저 멍할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보다 더 바빠졌다. 조 교수는 “자메이카가 워낙 외진 곳이고 사람이 귀하다보니 부모님은 누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했다”고 기억했다. 아버지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의사들은 물론, 중국인 뱃사람, 농장 노동자로 일하는 한국인, 사업하는 일본 사람 등 조 교수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린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조 교수는 아버지가 손님을 만날 때면 방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어른들의 대화를 듣길 좋아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회상이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된 소재였다. 대화 내용을 통해 떠나온 조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었다면, 대화법을 관찰하며 사람 대하는 법을 익혔다. 아버지는 상대의 사회적 지위나 명예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똑같이 진실한 태도로 대화를 나눴고, 어머니 역시 누가 오든 최선을 다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내왔다. 조 교수는 “어떤 사람과도 즐겁게 식사하며 대화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진실한 태도를 부모님이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 말했다.

한국에서도 자메이카에서도 부모님의 관심사는 아이들의 성적이 아니었다. 조 교수는 물론 다섯 누나도 성적 때문에 혼난 적은 한 번도 없다. 공부 못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기에 야단을 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육남매가 어린 시절 부모님께 가장 자주 들은 말은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머리 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마음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마음을 잘 쓰는 법에 대한 세 가지 원칙도 자주 들려줬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진실된 것인가를 먼저 점검하라”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거짓된 일이라면 애초에 시작을 말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진실된 일을 찾아 해야 할 것을 정했다면 ‘최선을 다하고 결과가 어떻든 그저 만족하라’고 강조했다.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되지만,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욕을 부리다 누군가를 짓밟거나 해치는 일도 경계하라는 의미다. 마지막은 어떤 일을 하든 그 목적은 ‘나눔과 베풂’에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 세 가지 원칙을 어렸을 때부터 엄청나게 들었고, 부모님이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늘 봐왔기에 자연스레 내 삶의 기준으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인생 고비마다 등대가 된 부모님 편지

중학교 때 유급을 할 정도로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조 교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성적에 대한 어떤 압박도 받은 적이 없기에 유급을 당했을 때도 “너무 놀면 안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별다른 충격도 받지 않았던 그다. 성적이 밑바닥인 채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연히 부모님의 한숨 소리를 듣게 됐다. 당시 조 교수의 다섯 누나 중 네 명이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의사인 아버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느라 허리띠를 조여 매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이들의 학비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뜩 들더군요. 나는 반드시 장학금을 받아서 부모님 걱정 없이 대학에 다녀야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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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와 조 교수의 아버지(오른쪽). 조 교수는 “아버지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훈계하지 않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셨다”고 기억했다.

평생 스승을 만난 것도 이때다. 수학을 가르치는 디브루인 선생님은 컴퍼스나 삼각자 없이 칠판에 완벽한 원과 도형을 그렸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산뜻하고 명쾌하게 풀어냈다. 유급생이 보기에도 디브루인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학은 쉽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조 교수는 “선생님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돼서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며 “수학 성적이 오르자 자신감이 붙어 다른 과목 성적도 덩달아 올랐다. 결국 그 선생님 덕분에 장학금 받고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부모님 곁을 떠났지만, 부모님의 가르침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위스콘신대에 등교한 첫날, 아버지의 편지가 도착했더군요. 그 편지를 시작으로 유학 시절 내내 무려 400통이 넘는 편지에 가르침을 담아 보내셨습니다.”

편지에는 학업에 지친 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부터, 한국인으로서 지켜야 할 처신과 품위, 진로에 대한 조언 등이 종이 앞뒷면 가득 꾹꾹 담겨있었다. 조 교수는 “편지 한 통 한 통이 나만을 위한 내밀한 상담이었다”며 “내가 고민하는 내용을 간단히 알리면, 아버지는 당신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지혜의 글귀를 가득 보내주셨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유학 시절의 고비들을 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편지는 받은 지 30여 년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내 읽어도 새로운 깨우침을 준다. 조 교수가 보여준 편지에는 ‘너의 편지를 받고 느끼는 바가 있어 글을 쓴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나 역시 의사가 된 뒤에도 문학을 하겠다고 서울대 문학과에 편입을 한 일도 있었다’ ‘외국행을 결정할 때도 나 혼자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독일로 갈 것인지, 가족과 함께 갈 수 있는 자메이카를 택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와 같은 진솔한 경험과 고백들이 편지지 다섯 장 앞뒷면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조 교수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기업체 취업과 학자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의 고민에 대해 아버지가 보내온 것”이라며 “나의 고민에 진심을 다해 공감해주신 아버지의 긴 편지를 읽고 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게 됐다”며 “다시 꺼내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새로운 문장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최고의 교수에서 행복 전도사로

그가 처음 교수로 부임한 곳은 미시간공과대다. 재직 기간 최우수 교수상 두 번, 공로상 한 번을 수상해 이 대학 ‘명예의 전당’에 조 교수의 사진이 세 번 올라 있다. 그가 받은 교수 평점 4.91점(만점 5점)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최고 기록이다.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 ‘교육계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고의 교수라는 화려한 명성을 뒤로 하고, 2010년 HD행복연구소를 설립해 행복 노하우 전수에 나섰다. 가족 관계, 자녀 양육, 감정 코칭 등이 행복연구소의 주요 커리큘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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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와 아내인 최성애 박사(가운데에서 왼쪽). 두 사람은 과테말라의 빈민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 교수법을 무료로 컨설팅해주는 봉사를 했다.

-기계공학자가 교육학과 심리학을 두루 섭렵하고 ‘희망 멘토’ ‘행복 전도사’가 됐다.

“아내(최성애 박사)의 역할이 컸다. 인간발달학을 전공하고 가족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는 아내를 통해 교육학과 심리학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나의 오랜 습관이 매일 아내와 한 시간씩 산책하는 것이다. 산책하는 동안 아내는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나는 이를 가만히 듣는 일이 많다. 1년 365일 매일 1시간씩 30년이면 1만 시간이다. 강의 시수로 따지면 4년제 대학을 다섯 번 다닌 셈이다. 내가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교수법과 상담법 분야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은 아내라는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이다.”

-자녀와도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인가.

“밥상머리 교육이라고들 하는데, 같이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것처럼 좋은 시간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만든 게 잠들기 전에 잠깐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거다. 아무 이야기나 나누는 게 아니라, 4개의 정해진 질문에 대해 가족들이 돌아가며 답한다. 질문은 ‘오늘 가장 좋았던 일이 뭔가’ ‘다행이었던 일이 있었나’ ‘감사했던 일은 뭔가’ ‘가족 중 아무나의 장점을 한 가지만 말하기’ 등이다. 이 중 핵심은 ‘다행이었던 일’을 찾아보는 거다. 실제 그 일을 겪었을 때는 나쁜 일인 것 같았는데, 이를 다시 긍정적으로 시각을 전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아들, 딸 남매가 지금은 성인이 되어 따로 살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을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이런 시간을 가져왔다.”

-자녀와 깊이 있는 대화를 시도하는 게 어색하다는 부모도 많다.

“어렸을 때는 대화가 없다가 사춘기에 갑작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어색한 게 당연하다. 나도 고아원 위탁 아동과 함께 집에서 생활하며 이 대화법을 시도해봤더니 ‘오글거린다’ ‘짜증난다’며 난리가 나더라. 그런데 2주간 이 시간을 지속했더니 아이들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더라. ‘가족 중 장점 말해주기’에서 자기를 지목해 좋은 점을 얘기해주면 굉장히 기분 좋아한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2주를 잘 버텨주는 것이다.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만 실천하면 어떤 집에도 대화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

-꼴찌를 해도, 유급을 해도 혼내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자녀들에게도 관대한 편인가.

“부모님은 내가 공부 못한다고 야단치지는 않았지만, 마냥 관대하신 분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엄격했다. 나는 열 살 때 비행기를 타고 자메이카로 떠났는데, 그때도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가슴에는 태극기를 달았다. 부모님께서는 외국에 나가 사는 순간부터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하신 거다. 무슨 일을 하든 어른들 눈에 벗어나지 말고 친구의 신뢰를 잃지 말라는 당부도 자주 하셨다. 성적표는 챙기지 않으셨지만 친구와 나눠 먹을 과자는 꼭 챙겨주셨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이런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엄격하게 가르쳤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울 때 삶의 규율을 강조하는 엄한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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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가 프린스턴대 초빙교수로 갈 때 당시 세 살이던 아들에게 쓴 첫 편지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어린 아들을 보고픈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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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 아버지에게 받은 첫 편지다. 한자를 많이 적은 건 열 살 때 자메이카로 이주해 한국말이 서투른 아들에게 우리말을 교육하기 위한 아버지의 배려와 노력이다.

-대학에 들어간 뒤 부모님과는 편지로 소통했다. 400통이 넘는 편지의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한마디로 요약하면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것 같다. 좋은 일이 있어도 거기에 도취되지 말고, 나쁜 일이 있어도 의기소침하지 말라는 조언을 항상 해주셨다. 내가 좌절감에 빠져있을 때는 ‘넌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기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행동을 삼가고 매사 점검하라’는 편지를 보내셨다. 아마 현실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심어주려고 하신 것 같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신 거라 생각한다. 내가 어떤 경우에도 희망과 긍정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살아온 것도 부모님의 편지 덕분이다.”

-『인성이 실력이다』 등의 저서를 통해 인성 교육을 강조해왔다. 자녀의 인성을 바르게 키울 방법은.

“흔히 인성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인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학습으로 익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다는 걸 가르치는 게 인성 교육이다. 분노를 산책이나 대화 등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법을 알려주고 지속적인 습관이 될 수 있게 지도하는 것도 인성 교육이 할 일이다. 인성 교육의 핵심은 말로 하기가 아니라 보여주기다. 자녀의 인성을 바르게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어떤 감정 상태에서도 좋은 행동을 선택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조벽 교수는
1956년 서울 출생
62년 서울 효창초등학교 입학
67년 자메이카로 이주
74년 자메이카 콘월 칼리지(Cornwall College) 고등학교 졸업
79년 미국 위스콘신대 기계공학과 학사
84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석·박사
88년 미국 미시간공과대학 기계공학과 교수
92년 미시간주(州) 최우수 교수상
96년 미국 공학교육학회 (ASEE) 교육자상
98년 미국 미시간공과대학 옴부즈맨 겸 학내재판장
2007년 동국대 석좌교수
2008년 한국 공학한림원 해동상
2010년 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2016년 대통령 표창
• 좌우명: 진실, 최선, 베풂
• 인생의 롤모델:
유년기:데모스테네스(『플루타르크의 영웅전』에 나오는 아테나의 웅변가다. 말더듬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한 명연설가다. 사실 나는 혀가 짧은 편이다. 나와 비슷한 콤플렉스를 가진 이의 성공담을 읽으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기:디브루인(고교 시절 만난 수학 선생님. 사춘기 시절 수학 공부의 재미를 알려준 분이다. 내 옷차림이 늘 흰 셔츠와 검정색 정장 바지인데, 이것도 디브루인 선생님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알로이시오 슈왈츠(베풂의 삶이 어떤 것인지 실천하신 신부님. 6·25 전쟁 직후 서울과 부산에서 ‘소년의 집’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하신 분이다. 우리나라 외에도 22개국의 빈민 마을에 학교를 운영하셨다. 교육을 통해 희망을 선물한 그분의 삶이 지향점이다)
• 삶에 지표가 됐던 책: 빅터 프랭클 『죽음의 포로 수용소에서』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다 좌절감을 느낄 때 이 책을 읽고 ‘내가 지금 주저앉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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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최고의 유산]
▶가난해도 괜찮아, 바른길 아니면 타협하지 마라
▶올바른 습관 익히면 성공한다, 큰일하려면 시간 약속부 터 지켜라

▶사람이 재산, 친구와 나눌 땐 네가 적게 가지 라던 어머니
▶벽을 넘으려 했던 지독한 공부…그 모습 이 세 엄친딸 만들었다
만화가 장차현실씨와 다운증후군 화가 딸 정은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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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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