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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벽을 넘으려 했던 지독한 공부…그 모습이 세 엄친딸 만들었다

1 이 기사는 2016-06-08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여성 최초의 치안정감
이금형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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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2003년 충북 진천경찰서장으로 일할 때 찍은 가족사진, 아랫줄 오른쪽이 이금형 교수, 왼쪽 위부터 첫째 딸 이소라씨, 셋째 딸 정아씨, 둘째 딸 진아씨, 남편 이인균씨, 시어머니 정진순씨. 부산지방경찰청장 시절 이금형 교수. 남편 이인균씨와 어린 시절 세 딸.


고졸·순경 출신으로 경찰 두 번째 고위직에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웠다면 포기했을 것
발끝에 집중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정상”


세 딸, 행시합격·코넬대연구원·의사로 키워
책 읽는 부모 옆에서 자연히 공부하는 습관
워킹맘은 잔소리할 시간에 자녀와 교감해야



고졸 순경으로 시작해 여성 최초의 치안정감이 되기까지, 이금형(58)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의 삶은 매 순간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여성·고졸·순경 출신이라는 한계는 그에게 항상 커다란 벽이었다. 처음부터 ‘여성 최초 치안정감’ 같은 거대한 것을 목표한 게 아니다. 그저 매일매일을,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하며 버텼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세 딸을 수재로 키워냈다. 경찰 이력만큼이나 ‘엄친딸 엄마’로도 유명하다. 그 배경엔 ‘자립심’을 강조한 그의 교육철학이 있었다. 2014년 공직에서 은퇴한 뒤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를 만나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비결을 들어봤다.

아버지 장례식날 치른 경찰 면접 시험

“금형아, 아버지는 네가 경찰이 된 모습을 누구보다 좋아하실 거야. 합격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자.” 후두암으로 5년간 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발인날이었다. 인생은 참 얄궂다. 아버지가 마지막 길을 떠나는 날 경찰 취업 면접이 잡혔다.

이 교수의 어머니 한동봉(87)씨는 그에게 장례식장에 오지 말라고 했다. 하늘이 미웠다. 이 교수는 면접장에 안 가려 했다. “그래도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인데…” 어머니 한씨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이 교수를 안았다. “괜찮아 금형아. 넌 할 수 있을 거야.”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선산에 아버지의 봉분(封墳)이 만들어져 있었다. 황토색 흙으로 덮인 봉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아버지 저 잘할게요.’ 그는 그렇게 1977년 순경으로 경찰 조직에 발을 들였다.

처음부터 경찰을 꿈꿨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꽤 잘 그렸다. 미대를 가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집안도 부유했다. 이 교수는 “머슴을 몇 명 부릴 정도로 형편이 넉넉했다”고 기억했다. 아버지는 건축 사업을 했다. 집안의 땅을 팔아 사업에 투자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후두암에 걸리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5년간의 투병 생활이 이어졌다. 어머니 한씨는 5남 1녀를 키우면서 한결같이 집안을 지키는 기둥 역할을 했다. 그는 “어머니도 부잣집에서 나고 곱게만 자라셨던 분이었는데, 증조부모·조부모와 아버지까지 다섯 분의 병 수발을 하면서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 하고 꿋꿋하게 집안을 꾸려가셨다”고 떠올렸다.

-어떤 어머니였나.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하면서부터 학교 수업료를 삼촌이 대신 내줘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다. 한겨울에도 냇물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빨래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항상 긍정적이고 성실했다. 늘 그 자리에 서서 집안을 지키는 기둥이었다. 지금도 큰오빠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여러 번 얘기해도 선산을 지키겠다고 청주 집을 떠나지 않으신다.”

-자식 교육에 대해선 어땠나.

“자신은 안 먹고 안 입어도 자식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내 미술 공부를 위해 돈을 꾸어 물감을 사주고 대회에도 나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셨다. 그때만 해도 여자는 고등학교에 잘 안 보내려고 했다. 그만큼 시골 동네는 보수적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편견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여자도 사회에서 할 일이 있다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늘 말씀하셨다.”

-어머님께서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은.

“웃어른 병 수발을 다 들면서 어려운 집안을 꾸려간다는 게 어디 보통 쉬운 일인가.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정말 열심히 사셨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5남 1녀가 무탈하게 컸다. 하루는 작지만 매일매일이 쌓여 정말 값진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어머니의 삶에서 느꼈다. 그런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었다.”
 
경찰대 출신 제치고 경감 승진 시험 전국 수석

경찰로 일한 38년, 1만3870일. 누구보다 치열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여자라서 안 돼’라는 말을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여성 차별은 부당하다’고 항의한다고 쉽게 바뀔 현실이 아니었다. 실력으로 입증해야 했다. 행동으로 호소했다.

둘째 딸 진아를 임신한 상태에서 토막 살인 사건 피해자의 지문을 채취한 적도 있었다.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라고 역하지 않을까. 여자라고 시체가 더 역한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여자 외과 의사는 임신했을 때 사람 배를 가르고 수술도 하잖아. 지문을 채취하는 일쯤이야’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동요가 가라앉으며 차분해졌다. 잘린 손목의 손가락을 깨끗이 닦아내고 지문선을 드러나게 해 지문을 채취했다.

2000년대 초엔 경찰청의 여성정책실을 맡았다. 신설 부서였기 때문에 업무 공간 마련부터 예산 확보까지 모든 과정이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이핏대’다. 예산과 인력을 따기 위해 경찰 내 관련 부서는 물론 국회나 청와대를 쫓아다니며 ‘핏대’를 올리며 떠든다고 붙은 별명이다. 근 한 달을 그렇게 관련 부처를 쫓아다니다 나중에는 성대결절로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가 되기까지 했다. 그는 그렇게 ‘여자라서 안 된다’거나 ‘여자니까 맡으라’는 편견에 맞서 발로 뛰며 자신을 증명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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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광주지방경찰청장 시절 야간 집회 현장을 순시하고 있는 이금형 교수.

이 교수는 경찰 조직 내에서도 지독한 공부벌레로 통했다. 경감 승진 시험을 준비할 때 일이다. 고졸 순경 출신이라는 한계는 여성이라는 벽 못지않은 벽이었다. 경찰대 등 인맥과 학연으로 묶인 경찰 조직 내에서 아무도 그를 스터디그룹에 끼워주지 않았다. 남들은 쉽게 구하는 승진 시험 합격 선배들의 요약 노트도 그에겐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오기가 발동했다.

직접 요약 노트 세 권을 만들었다. 그 노트를 들고 경찰대 출신 동료와 간부후보생 동료들을 찾아다녔다. “여기 내가 만든 요약 노트다.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함께 공부하자.” 그렇게 직접 부딪히며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그해 경감 승진 시험에서 쟁쟁한 경찰대 출신들을 다 제치고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그는 38년 경찰 인생을 ‘높은 계단에 오르는 과정’에 비유하곤 한다. “계단 끝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기까지 언제 올라가나 한숨이 나오죠. 하지만 발끝에 집중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요. 처음부터 ‘여성 최초’라던가 ‘경찰 청장’과 같은 거대한 목표를 생각했다면 진작에 지쳐 포기했을 겁니다.” 어머니 한씨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어머니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시는 분이 아니었어요. 매일매일을 정말 힘차게 사셨죠. 그런 삶의 태도가 저한테도 고스란히 이어졌죠. 어머니처럼 복잡한 생각 말고 ‘오늘 하루에 충실하자’라고 마음먹으면 섭섭함을 떨치고 맡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대를 이어 효과 본 녹음기 공부법

그는 ‘엄친딸 엄마’로도 유명하다. 첫째 딸 이소라(33)씨는 최연소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방송통신위원회 서기관으로, 둘째 딸 진아(31)씨는 카이스트 박사를 졸업 후 미국 코넬대 의과학센터 연구원으로, 셋째 정아(29)씨는 레지던트 2년 차 치과의사다.

그는 아이들에게 그 흔한 과외 한 번 시켜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동네 보습학원만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세 딸 모두 중학교 내내 전교 최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다. 첫째 소라씨와 진아씨는 과학고를, 셋째 정아씨는 외국어고를 졸업했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 달빛을 맞으면서 집에 오는 게 일상이었던 그였다. 좋은 학원 정보, 대학 입시 정보를 얻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딱 한 가지 원칙을 지켰다. 늘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35세에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6년 만에 생애 첫 학사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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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대학원 박사 수료식에서 친정어머니 한동봉(왼쪽)씨, 시어머니와 함께.

동국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거쳐 53세에 같은 대학원 경찰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항상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책을 읽어 녹음한 뒤에 집에서 설거지할 때도, 아침밥을 준비할 때도, 차 안에서 이동할 때도 항상 틀어 놓고 들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그만의 요령이었다.

세 딸은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컸다. 큰딸 소라씨는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공부하는 모습이었다”며 “동생과 함께 신나게 놀다가도 그런 엄마가 신기해 엄마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들곤 했다”고 기억했다. 이 교수는 공부할 양이 많을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찰청 과학수사과로 주말에도 종종 출근했다. “자장면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자주 데리고 나갔어요. ‘여기가 엄마가 일하는 곳이야 구경해 볼래’하고 아이들을 사무실에 풀어 놓고 나는 조용히 앉아 공부했죠. 그러고 조금 지나면 신기하게 아이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제 옆으로 와서 앉아요. 엄마가 뭐 하나 구경하는 거죠.” 그렇게 엄마 옆으로 모여든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책을 꺼내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정말 안 했나.

“내가 공부를 왜 하게 됐는지를 곰곰이 돌아봤다. 누가 하라고 해서 했던 공부가 아니다. 내 삶은 늘 부족한 무언가를 메꾸기 위한 도전이었다. 여성·고졸·순경이라는 벽은 언제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난 그 벽을 깨야 했다. 그래서 절박했다.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었단 얘기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한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그 본능을 일깨워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공부하라는 말 백 마디보다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엄마와 자녀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엄마는 아이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앞에서 본을 보이면 되는 존재다. 자녀의 등을 떠밀 필요도, 잡아끌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발 앞에서 기다려주면 된다.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에게 좋은 자극제다. 책을 읽는 엄마의 진지한 표정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컷 뛰어놀다가 엄마 옆으로 모여든다. 동화책이든 만화책이든 상관없다. 우선 엄마 옆에서 책을 꺼내 들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습관이 되면 공부가 된다. 늘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에게 사회인으로서 내 경쟁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아이와 교감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공부가 습관이 됐다고 성적이 모두 좋을 수는 없지 않나.

“노력뿐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 성적 문제로 딱 한 번 둘째 아이를 크게 혼낸 적이 있다. 시험을 앞두고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대충대충 준비했다. 그것도 그냥 두고 봤다. 난 아이들이 높은 성적에 우쭐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통해 공정한 경쟁이란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뒤따른다는 이치 말이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노력은 하지 않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억울해하더라. 넌 울 자격도 없다고 크게 혼냈다. 성적이 떨어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독여주지 않는 엄마에게 실망한 눈빛을 보였지만 다음 시험부터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무조건 다독여만 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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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 공부법을 아이들도 따라 했다던데.

“엄마가 항상 녹음기를 집에서 틀어 놓고 들으니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그게 습관이 됐다. 첫째 소라는 과학고를 준비할 때 학업량이 갑자기 늘어 부담이 커지니까 교과서 내용을 녹음해 학교 등하굣길에 반복해 들었다. 카이스트 시절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도 같은 방법을 쓰더라. 막내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자기 목소리로 책 내용을 녹음해 듣는다. 책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머릿속에 한 번 각인이 되고, 반복해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외워져 시간도 줄을 수 있고 효과도 좋다.”
 
-시부모가 육아를 많이 도와줬다고 하던데.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바쁜 나와 남편의 빈자리를 시부모님께서 메꿔주셨다. 남편 이인균(59)씨도 삼성 공채로 입사해 이마트 부사장까지 올라갈 정도로 바쁜 삶을 보냈다. 시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경찰을 계속하지 못했을 거다. 아이 인성에도 참 좋은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항상 우리 아이들이 인사를 제일 잘한다고 칭찬하곤 했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아이들에게 헌신할 정도로 손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하지만 항상 아이들에게 한 가지 원칙을 꼭 지켰다. 간식거리가 있을 때 아이들이 먼저 음식을 들면 ‘할머니 먼저 줘야지’라고 조용하면서 인자하게 주의를 줬다. 그럼 아이들은 할머니께 먼저 간식을 건넸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그걸 먼저 드신 것도 아니다. 그러면 꼭 다시 ‘그래 우리 착한 애기들’ 하면서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곤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웃어른에 대한 공경을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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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형 교수가 세 딸에게 남기는 편지.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고 적었다.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항상 감사하고 살아가자”는 당부도 담았다. 김경록 기자

-엄마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시부모님은 예절과 애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것 같다.

“3대가 모여 살았던 환경이 워킹맘인 나와 아이 사이의 균형을 찾아줬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워킹맘이 일과 육아 모두를 완벽하게 해낸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어느 정도 짐을 나눠야 엄마도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잔소리가 늘고 아이와 갈등만 늘어난다. 워킹맘은 시간이 생명인데, 잔소리할 시간에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교감을 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게 낫다.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를 좀 심하게 겪었다. 진지하게 경찰을 그만둬야 할까 고민했다. 아이에게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난 경찰로 열심히 노력하는 엄마가 좋아요. 엄마는 경찰 열심히 하세요. 저도 걱정 끼쳐드리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할게요.’ 그 말에 나도 다시 용기를 냈다. 아이들도 멋지게 자기 분야를 개척해가는 엄마를 응원한다.”

이금형은
1958년 충청북도 청주시 출생
77년 청주대성여자상업고 졸업, 순경 입직
97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졸업
2001년 동국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2006년 3월~2007년 1월 서울 마포 경찰서장
2008년 동국대 대학원 경찰행정학 박사 졸업
2011년 5월~2012년 10월 제6대 광주지방경찰청장
2013년 4월~2013년 12월 제38대 경찰대학 학장
2013년 12월~2014년 12월 제24대 부산지방경찰청장, 경찰 명예퇴직
2015~현재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 고문, 양성평등 교육원 초빙교수

인생의 롤모델 : 미국 하원 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네 아이를 키운 뒤 정계에 입문한 그는 사회의 모든 역할은 엄마 역할의 확장이다”라는 신념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 제정에 앞장섰다. 엄마로, 여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지 고민하게 됐다.
내 인생을 바꾼 책 : 고 안병욱 선생님의 에세이집.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빛나는 법이다”라는 문구를 가장 좋아한다. 고졸 출신 여경이라도 실력을 갖추면 된다는 자신감과 철학을 갖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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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최고의 유산]
만화가 장차현실씨와 다운증후군 화가 딸 정은혜씨
▶음악은 경쟁 아닌 몰입, 결과에 초연한 엄마에게 배웠죠
▶아들 뜻 존중하는 ‘오케이 파파’가 클린턴의 단골 셰프 만들었다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아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백일 때부터 책 읽어주니, 나중엔 아이 혼자 수천 권 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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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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