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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우릴 세상의 중심에 두니, 장애 향한 낯선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1 이 기사는 2016-06-01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만화가 장차현실씨와 다운증후군 화가 딸 정은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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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씨가 그린 소녀상.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본다던 은혜
되레 괘념치 말자고 둘이 실컷 돌아다녀
생각과 감정 거리낌 없이 표현하게 지켜봐


졸업하고 갈 곳 없어 방에만 있던 은혜
장애 여성 그리며 다시 세상에 말 걸기
마음으로 외친다 ‘은혜씨 화가 되세요’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컬러링북처럼 복잡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랑스럽다. 다운증후군 화가 정은혜(27)씨가 그린 컬러링북 『네 마음을 말해봐』. 장애인인 작가의 눈에 비친 장애 여성들의 몸과 몸짓,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은혜씨의 어머니는 만화가 장차현실(52) 작가다. 작가는 화가가 돼서 자신의 책을 출간한 딸을 보며 “이제야 울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작은 화실 ‘소꿉’에서 그림 그리는 두 모녀를 만났다.

발달장애 안고 태어난 은혜, 상처가 된 말들

장차현실 작가의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돌아가셨다. 삼남매의 생계는 어머니가 책임졌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어머니 자신의 삶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셨죠. 자식에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일도 없었고요. 어릴 때는 무심해 보이는 어머니의 태도가 서운하기도 했는데 자라고 보니 저도 엄마의 그런 점을 닮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본 기억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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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장차현실 작가는 선화예고 동양화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홍익대 동양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했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첫째 딸 은혜를 낳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만화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990년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던 날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의사는 아기에게 장애가 있다고 했다. 장 작가는 다운증후군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다. “그냥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다운증후군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저 너무 두려웠었죠. 그때부터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병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표현하기 힘들 만큼 슬프고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인생이 암담하기만 했다. 남편과는 은혜가 여섯 살 무렵 헤어졌다.

아이는 너무 예쁘고 순하고 착했다. 너무 예뻐서 아이를 포기할 생각 따위 들지 않았다. 장 작가는 “주변 시선이 너무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한다고 하는 말인데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상처로 박혔어요. 그런 말들은 잊히지도 않고 견뎌낼 수도 없는 것들이에요.”

“쟤 말은 할 수 있겠니?” “어머나, 쯧쯧.” “혼자 어쩌려고.” 화살 같은 말을 뒤로하고, 그는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다. 오롯이 은혜 하나만 보고 살았다. 장 작가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싫고,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며 “어떻게든 내가 잘 키우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랬을까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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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출간한 컬러링북 『네 마음을 말해봐』를 들고 있는 은혜씨. 그는 “내 책이 나와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를 키우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장애아들은 조기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엄마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이가 교육받는 동안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일러스트로 시작했다. 110만원 정도 수입이 들어오면 90만원은 은혜 교육비로 들었다. 은혜가 공부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운동장 밖에 앉아 기다리며 일기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은 켜켜이 쌓여 책이 됐다. 사람들의 낯선 시선을 이겨내는 자신의 하루하루를 그린 만화였다. 그 만화는 장애아 은혜를 키우며 살아가는 독신모 엄마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책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로 출간됐다.

“하루는 은혜가 사람들이 이상하게 자기를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 나가지 말까?’하고 물으니 활짝 웃으며 ‘아니, 나가자’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의 낯선 시선을 멈추게 해줄 방법이 딱히 없었는데 은혜는 괘념치 말자고 했죠. 그때부터 둘이 실컷 나돌아다녔어요.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 무뎌질 때까지, 아니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될 때까지요.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나니 그런 낯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네 의견 존중해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아이를 너무 억압하면 안 돼요. 장애 아이들을 보면 배운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하려고만 하거나 로봇처럼 감정 표현을 전혀 하지 못하고 짜인 대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요. 성이나 분노는 조절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맞지만 그 외에 아이가 느끼는 감정들은 풍부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은혜는 여느 발달장애인과 달리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인터뷰 중간 “나 어때요? 예뻐요? 오늘 미용실 가서 머리 했어요”라며 어깨너머로 머리를 넘기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장 작가가 “우리를 세상의 중심에 뒀다”고 답하자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며 “역시 장차현실”이라며 칭찬도 했다.

이렇게 은혜가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기까지는 장 작가의 기다림이 있었다. 장 작가는 훈육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장 작가의 교육철학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도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면 그때 해줬다. 아이가 화가 났을 때는 기다려줬다. 스스로 깨닫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혜가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할 때면 조용히 있다가 왜 화가 났는지 묻고 은혜의 감정을 공감한 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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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찍은 장 작가의 가족사진.

장 작가에게는 이제 남편과 아들도 생겼다. 2008년 6월 재혼식이 아닌 가족식을 했다. 가족식에는 신부인 장 작가가 전남편과 사이에 둔 딸 은혜와 영화감독 서동일씨와 사이에 낳은 세 살배기 아들 은백이가 함께 했다. 이들이 한 가족을 이뤄 사는 것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들은 결혼식이라 아니라 가족식이라고 불렀다.

그날 이후 장 작가의 가족은 여성지를 두루 장식할 만큼 이슈가 됐다. 장애아를 둔 독신녀, 총각 남편이라는 타이틀로 말이다. 장 작가는 “우리 집은 우리 사회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라며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돈을 벌고 남편이 아이들 육아를 맡았다. 장애를 가진 딸과 비장애인인 아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만화 같은 에피소드를 쏟아내며 살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또리네 집』이란 이름의 만화책으로 출간됐다.

장 작가의 교육철학은 은혜와 16세 터울인 아들 은백(11·또리)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장 작가는 “아들이 요즘 게임에 빠져있는데 내버려두고 있다”며 “문제를 스스로 느끼고 헤어나오려고 할 때 도움을 주자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내가 경험한 경험치에 빗대어 나온 기준을 주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내가 살아온 삶 속에서 얻은 경험치가 반드시 더 뛰어나다거나 미래적이진 않죠. 구태의연한 편견일 수도 있기에 아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과거를 살아온 경험만으로 미래를 살 사람의 생각을 짐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려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이고, 만일 아이가 한계를 보인다면 그것 또한 그 아이의 모습이라고 인정합니다.”
 
행복한 부모 밑에 행복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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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에 있는 두 사람의 화실 ‘소꿉’ 전경.


은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은혜가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만 있을 때였는데 장 작가가 화실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장 작가는 “또래와 교류 없이 집에 있는 게 마음에 걸려서 딸에게 화실 바닥 청소와 아이들 수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이들이 그림 그릴 때 귀퉁이에 앉아서 자기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도 은혜씨의 그림에는 개성과 힘이 있었다.

그 길로 주변 예술인들을 불러 은혜의 그림을 보여줬다. 한번 앉으면 3시간씩 그림을 그려내는 덕에 그림 수도 적잖았다. 예술인들도 대부분 감탄했다. 지난 2월에는 발달장애여성연구원 ‘손잡다’의 연구원들이 화실을 찾았다가 은혜의 그림을 보고 “마침 찾고 있던 작품”이라며 대번에 출간 제의를 했다. 은혜는 “그림으로 그리는 건 다 좋다. 사람 그리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예쁘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린 그림들은 또래 장애 여성의 몸, 시선 등이다. 자신의 자화상도 있고 ‘장애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사진전의 작품을 보고 그린 것들도 있다.
 
“은혜가 화가가 되고 난 후부터 굉장히 달라졌어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고 무엇보다 당당해졌어요. 일반인들과 대등하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생각도 전달하려고 하죠. 이렇게까지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엄마의 기다림에 은혜가 멋지게 답을 해준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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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이야기를 만화의 소재로 삼은 이유는.

“남들의 눈에는 장애인으로만 비치겠지만 내게는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모른다. 아이의 말 한 마디, 하루의 일상이 그대로 만화가 됐다. 장애에 대해 잘못된 편견들은 바로 잡고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힘을 주고 싶다. 엄마인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놀라게 하는 은혜의 촌철살인 같은 말들은 가끔 사회에 원망을 갖고 삐뚤어지려는 나를 정신이 들게 하는 순수한 힘이 있다.”

-은혜를 키우며 가장 걱정했던 때는 언제였나.

“어릴 때보다 커서가 더 걱정이었던 것 같다. 장애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어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은혜가 문을 닫아걸고 방에 앉아만 있던 시기가 있었다. 닫힌 문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상자에 갇힌 것처럼 갑갑했다. 그런데 그 작은 방에서 딸아이는 스스로 헤어나올 구멍을 찾아 나오더라. 그게 바로 그림이었다. 아이가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한 거다. 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니 아이 스스로 굉장히 당당해지고 자랑스러워한다.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또래 사촌들은 “대학은 어디로 갈 거니” “꿈은 뭐니”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니” 같은 일상적인 질문을 받았는데 은혜는 그런 질문조차 받질 못했었다. 그런데 은혜에게 꿈이 생겼고 그림으로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은혜의 개성 있는 그림이 생동감을 잃지 않도록 그림 그릴 공간을 마련해 주고 지금처럼 은혜만이 가진 시선을 유지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내게 20대에 혼자 어떻게 견뎌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사실 슬픔을 차곡차곡 쌓아왔을 뿐 견뎌낸 건 아니었다. 그게 어떻게 견뎌지는 일이겠나. 그래도 절대 울지 않았다. 내가 우는 건 곧 딸에게 “너 때문에 힘들어”라는 말이라고 생각돼 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주 운다. 그리고 우는 게 더 이상 은혜에게 미안하지 않다. 행복하고 좋아서, 슬픔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은혜가 좋아하는 그림을 찾게 돼서 눈물이 나고, 아들이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눈물이 나고, 남편이 지금처럼 투닥거리며 잘 지내줘서 눈물이 난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떨쳐버리고 싶은 우리의 그 시간은 사실 아물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텅 빈 것들이 꽉 차면서 차오르는 눈물도 있다는 걸 알았다.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만의 행복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부모가 당당하지 못하면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눈치를 보게 된다.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부모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은혜에게 주고 싶은 ‘최고의 유산’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자립적인 삶을 주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스스로 설 힘을 가진 삶 말이다. 내 어머니는 항상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그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나 역시 나의 삶은 내가 책임지려고 했다. 은혜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나는 화가 김봉주 화백께서 은혜에게 선물한 글귀 ‘은혜씨, 화가 되세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마음으로 외친다. 은혜씨 화가 되세요라고. 그 말 속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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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씨가 그린 정물화. 그림 왼쪽 하단에 정은혜 영화배우라고 사인했다. 은혜씨는 2005년 국가인권위가 지원한 옴니버스 인권 영화 ‘다섯개의 시선’에서 박경희 감독의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편에서 다운증후군 소녀 역을 맡았다.

-은혜씨가 생각하는 당당한 삶이란.

딸 은혜= “어려서부터 나는 늘 엄마가 좋았다. 엄마처럼 나도 그림 그리고 책도 내고 살면 좋을 것 같다. 그림 그릴 때가 좋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다. 내 그림을 선물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거다. 유명해지고 더 많은 그림도 그리면서 나의 삶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장차현실은
1964년 서울 출생
76년 서울 쌍문초 졸업
80년 정의여중 졸업
83년 선화예고 졸업
88년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97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색녀열전’ 연재.
프리랜서 만화가로 일하기 시작
○ 연재물 : 국민일보 ‘현실을 봐’, 인터넷 한겨레 ‘장현실의 현실을 봐’, 우먼타임스 ‘덕소부인’,
여성신문 ‘작은여자 큰여자’ 등
○ 저서 :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먹자』 ·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 『사이시옷』 · 『이어달리기』 · 『슈퍼스타 집중이』 · 또리네 집』 등
○ 추천하는 책 : 『그래, 엄마야』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 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모든 엄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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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최고의 유산]
▶음악은 경쟁 아닌 몰입, 결과에 초연한 엄마에게 배웠죠
▶아들 뜻 존중하는 ‘오케이 파파’가 클린턴의 단골 셰프 만들었다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아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백일 때부터 책 읽어주니, 나중엔 아이 혼자 수천 권 읽더군요
▶돈만 벌다 사라질 건가, 선한 빛을 남기고 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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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엽 기자lum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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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기자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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