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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아들 뜻 존중하는 ‘오케이 파파’가 클린턴의 단골 셰프 만들었다

1 이 기사는 2016-05-18 오전 00:02: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미국을 요리한 ‘아키라백’ 백승욱 셰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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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아키라백·가운데) 셰프와 어머니 강영희(오른쪽), 아버지 백석원씨. 세 사람의 뒤에 걸린 그림은 어머니 강씨가 그린 것이다. 승욱씨는 미국·인도 등에 이어 지난 2일, 서울 청담동에 한식당 ‘도사 바이 백승욱’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에 꼭 어머니가 그린 추상화를 건다. 요리에 영감을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믿고 맡겨” 중학생 시절 세계여행 보낸 부친
스노보드 부상 후 요리사 시작할 때 조건 하나
“하고 싶은 일을 해, 단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이젠 머라이어 캐리, 패리스 힐튼이 찾는 셰프
청담동에 자기 이름 딴 한식당 열며 한국 진출
“젤 어려운 손님은 대통령·연예인보다 부모님”


 
1987년 열다섯 살 소년은 미국 콜로라도 아스펜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다. 한국에선 뛰어난 야구 실력과 리더십으로 친구들에게 인기 많던 중학생의 삶은 그 후 180도 바뀌었다. 영어 못하는 동양 소년을 대하는 친구들은 차가웠다. 하지만 소년은 스노보드를 타며 친구를 사귀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입상하며 스노보드 선수로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발목 골절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청년이 된 소년은 요리사의 길을 택했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가수 머라이어 캐리, 힐튼 가문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을 단골로 둔 유명 셰프로 성장했다. 아키라백, 한국 이름 백승욱(42)의 얘기다. 요리 인생 20년 만에 고국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 그를 지난 2일 만났다. 그가 늘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해온 아버지 백석원(71)씨, 어머니 강영희(69)씨와 함께였다.

 미국 이민 후 촉망받는 스노보드 선수로

“아빠랑 승욱이는 어릴 때부터 친구 같은 사이였어요.” 어머니 강씨가 말했다.

80년대만 해도 가장인 아버지는 육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백씨는 달랐다. 무역회사에 다니며 외국 출장이 잦았던 그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남녀 차이를 강조하거나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설거지 같은 집안일은 기본이고 퇴근 후엔 아들과 권투시합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개인 사업을 시작한 후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빴지만 아들딸과 함께 테니스 치는 시간이 우선이었다. 백씨는 “아이들이 영어를 못해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려워했다. 나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했다. 영어 공부도 아이들보다 열심히 했다. 승욱씨는 “아버지는 40대 중반이었지만 누나와 나보다 더 열심히 영어 공부했다. 틈만 나면 미국 TV를 보고 또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인 동료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백씨의 자식 교육은 한결같았다. 성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한 번도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봤다. 3대째 이어진 교육법이다. 백씨는 “아버지도 내가 어릴 때부터 뭘 하라,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었다. 나도 그렇게 했다.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기 일을 해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기부도 마찬가지다. 백씨는 오래전부터 재단을 만들어 방글라데시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등 꾸준히 선행을 실천했지만 자녀에게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 스스로 느끼길 바랄 뿐이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승욱씨의 얘기에 “마음을 넘어 실제 그렇게 하라”며 미소 지었다.

백씨가 미국 이민을 결정한 이유 중엔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대학교 등록금과 맞먹는 비싼 학비의 사립고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공부보다 스노보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승욱씨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를 차지할 만큼 촉망받는 선수가 됐다. 스노보드는 훈련이나 장비 구입 등에 많은 돈이 드는 운동이었는데 승욱씨는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고 직접 후원자를 찾았다. 자신의 스노보드 타는 모습을 촬영해 여러 회사에 보내 후원을 받았다. 용돈도 스스로 벌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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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던 승욱 씨의 스노보드 선수 시절.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라”는 아버지와 약속

하지만 부상이 승욱씨의 발목을 잡았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다 발목 골절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백씨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스노보드 선수들이 나이가 들수록 겁이 생겨 부상이 잦아지고 도전을 주춤하게 돼 결국 선수생활을 접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씨는 아들이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거나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들은 엉뚱한 카드를 내밀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아들의 결정에 늘 ‘오케이’라고 답했던 아버지는 처음으로 단호하게 ‘노’라고 얘기했다. 백씨는 “미국에선 선수 출신 사업가가 자신의 전문 지식을 살려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야 성공한다. 아들이 스노보드 선수였던 만큼 내 사업을 물려받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 쉽게 자리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요리사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한 달 넘게 아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늘 아들 편이었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의 강한 반대에도 아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지원했던 일식당의 주인 켄이치 셰프가 “노란 머리카락을 모두 밀고 와야 받아주겠다”고 하자 스스로 머리카락을 밀고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결국 아들이 이겼다. 백씨는 대신 조건을 걸었다. ‘음식은 사람이 먹는 것이니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가족 부양하느라 먹고 살기 바빴지만 넌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다만 절대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덧붙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요리할 때 좋은 재료와 위생을 철저하게 지켰고 한 그릇의 요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승욱씨의 주방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음식 만들 때 집중해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1분도 늦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 주방에서 세 번 잘못하면 짐을 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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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씨의 주방에선 지각, 휴대전화 사용 모두 금지다. 라스베이거스 ‘옐로 테일’ 주방의 모습.

새벽 5시 출근하며 200개씩 스시 연습

지금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요리사지만 주방에서의 첫걸음은 가시밭길이었다.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그에게 군대처럼 엄격한 분위기의 주방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승욱씨가 맡은 첫 번째 일은 초밥용 밥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은 밥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식초 비율을 못 맞췄거나 쌀을 잘못 씻어 색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원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였지만 그는 오전 5시에 나왔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 남은 시간엔 선배들이 롤 마는 모습이나 칼 쓰는 법, 회 뜨는 순서 등을 곁눈질로 보며 배웠다.

어릴 때부터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 야구를 할 때나 스노보드를 탈 땐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훈련을 빠지는 법이 없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하루에 스시 200개씩을 쥐며 훈련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부주방장이 됐다.

아키라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그때부터다. 승욱이라는 이름을 외국인들이 부르기 어려워해서였다. 5년 만에 켄이치의 주방장이 됐고, 켄이치에 이어 미국 일식의 대가로 꼽히는 마사하로 모리모토와 요리 명장 노부 마츠히사의 레스토랑 등에서 일했다. 부지런함과 끈기, 승부욕이 그를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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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씨의 단골인 힐튼 가문 상속녀 패리스 힐튼과 함께.(왼쪽 사진) 그의 요리를 극찬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2003년엔 ‘노부 마츠히사’ 아스펜 지점의 총주방장을 맡았다. 당시로선 최연소이자 비(非) 일본계 최초의 주방장으로 화제가 됐다. 그곳의 단골이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전 미 국무장관은 정당 주최 행사를 그에게 맡겼다. 심장 수술 후 회복기에 있던 클린턴을 위해 그는 은대구를 미소(일본 된장) 소스에 사흘간 재운 뒤 다시 미소 소스를 발라 구워낸 요리를 내놨고, 클린턴은 “기막히게 훌륭한 음식이었다”고 인사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요리사로 이름을 알린 후엔 반대로 아들을 채찍질했다. 혹시 아들이 자만해지진 않을까 “늘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의 입맛이 똑같지 않고 늘 변하는 만큼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꾸준히 공부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어머니 강씨는 요즘도 하루걸러 한 번씩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다 큰 아들에게 공부하란 말이 잔소리로 들릴 법도 한데 승욱씨는 “매일 듣는 얘기지만 늘 감사한다. 자만해지지 않으려 다른 레스토랑도 많이 찾아다니며 열심히 공부한다”며 웃었다.

2007년엔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식당 ‘옐로 테일’ 총주방장이 됐다. 이후 인도·인도네시아의 호텔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낸 데 이어 지난 2일 청담동에 모던 한식당 ‘도사 바이 백승욱’을 열었다. 오는 7월엔 서울 남산에 일식당 ‘아키라백’을 연다. 방콕·싱가포르에도 ‘아키라백’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오픈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키라백이 아닌 백승욱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건 모험 아닌가.

아들 백승욱=“맞다. 상당한 부담이 있다. 아마 아키라백을 사용했다면 두세 배쯤 빨리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고국에 내는 첫 레스토랑에서는 한식을 선보이고 싶었다. ‘노부’가 일식당이어서 나를 일식 요리사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내 요리엔 분야가 없다. 한식도 내 요리의 기본이다. 한국 음식이니까 한국에 먼저 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식자재를 쓰고 내가 자라면서 받은 느낌을 요리에 담는다. 내가 하고 싶었던 레스토랑의 모습이다. 10년 동안 오고 싶었던 한국이다. 내 음식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인다. 일주일에 5일만 영업한다. 임대료와 직원들 월급을 내고 나면 난 월급도 못 가져간다. 아마 자리 잡기까지 3~4년은 걸릴 거다. 요즘 그렇게 오래 기다려줄 투자자는 없다. 다행히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열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선뜻 주면서 갚지 말라고 하셨다.”

-왜 갚지 말라고 했나.

아버지 백석원=“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건이 있으면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동안 많은 투자자·호텔에서 투자 제안을 받았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고국에서 요리하는데 돈 때문에 못할 순 없지 않나. 한국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 아들을 보니 정말 뿌듯하다.”

-자녀들에게 늘 ‘오케이’라고 했다던데.

아버지=“아이들을 믿었다. 가족 여행도 자주 갔지만 중·고등학교 땐 여행 가라고 신용카드를 줬다. 내가 해외 출장이 잦아 젊을 때부터 외국에 나갈 일이 많았는데 가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았다. 아이들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배우길 바랐다. 미국 친구조차 나를 의아하게 봤지만 내 믿음대로였다. 아이들은 카드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도 아이들을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결정에 오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딜 갔나. 그리고 뭘 배웠나.

아들=“많은 곳에 갔다. 그리스·체코도 중학교 때 갔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속 그리스도 세 번이나 다녀왔다(웃음). 사람들의 삶을 보면 시야가 넓어졌다. 기회도 보였다. 여기에선 어떤 걸 하면 잘될 거라는 구상도 해봤다. 무엇보다 예산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의 신용 카드가 있다고 허투루 쓰지 않았다. 예산대로 아껴가며 여행했다. 그때 경험이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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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가서 적응하던 당시의 승욱씨 가족사진. 가족은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더 돈독해졌다. 사진 왼쪽부터 어머니 강영희씨, 승욱씨, 누나 승연씨, 아버지 백석원씨.

-어머니에겐 받은 유산은.

아들=“엄마는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다. 특히 18년 전 시작한 그림은 수준급이다. 어머니의 그림은 내 요리에 영감을 준다. 요리에 예술적 감각은 필수다. 예전에 선배들이 영감을 받기 위해 미술 작품 보러 간다고 할 때 겉멋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 그림의 색감이나 패턴을 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배운다. 내가 어머니만큼 색과 패턴 같은 미술적 요소를 이해하게 되면 내 요리도 크게 업그레이드될 거다. 어머니는 요리 실력도 뛰어나다. 퓨전 요리에 강한데 80년대에 갈비찜에 버터를 넣어 미국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요리사로서 아들을 인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

아버지=“승욱이가 요리를 하다 20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했다. 요리 지식에 갈증을 느껴 스스로 한 결정이었다. 학교라면 그렇게 싫어하던 아들이 스스로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걸 보고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와서 공부하더라. 음식 재료에 한국 고추장을 쓰는 걸 봤을 때도 뿌듯했다. 실제 아들은 한국 전통 장에 관심이 많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경험이 요리에서도 나타났다. 정말 기뻤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 유명한 단골이 많다. 가장 신경 쓰는 손님은.

아들=“부모님이다. 대통령이나 유명 연예인보다 더 신경 쓰인다. 오늘(도사 오픈 당일)도 부모님이 저녁에 식사할 예정인데 긴장된다.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하신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앞에서 말씀은 안 하신다. 하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인 만큼 만족시키고 싶다.”
 

백승욱(Akira Back)은

1974년 서울 출생
86년 서울 학동초 졸업
87년 미국 이민
90년 스노보드 시작
92년 콜로라도 로키마운틴스쿨(사립고) 졸업
96년 세계스노보드대회 하프파이프 부문 5위
2003년 AIC(Art Institute Colorate) 요리학과 수료
콜로라도 아스펜 ‘마츠히사’(노부 운영) 총주방장(최연소·최초의 비일본계)
2007년 미 NBC ‘아이언 셰프’ 출연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옐로테일’ 오너셰프
201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다 MD플레이스 호텔 아키라백 오너셰프
2016년 한국 ‘도사 바이 백승욱’ 오너셰프
인생의 롤모델: 아버지
좌우명: Just Do It(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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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최고의 유산]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아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백일 때부터 책 읽어주니, 나중엔 아이 혼자 수천 권 읽더군요
▶돈만 벌다 사라질 건가, 선한 빛을 남기고 갈 건가
▶장학 사업하며 행복하다던 아버지, 나눔이 최고의 가치

▶나눔이 축복이라던 어머니, 세상 살리는 디자인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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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기자asitwere@joongang.co.k
강남통신·열려라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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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기자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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