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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돈만 벌다 사라질 건가, 선한 빛을 남기고 갈 건가

1 이 기사는 2016-04-20 오전 00:40: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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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신사동에서 만난 민병진 원장과 딸 민승기 대표.


4대째 의사 가족
민병진 ‘민치과’ 원장과 딸 민승기씨

민병진(64) ‘민치과’ 원장의 집안은 4대째 의사다. 할아버지 민영성씨는 경성제대 의대를 졸업한 외과의사, 아버지 민건식씨는 이비인후과의사였다. 치과의사의 길을 택한 민 원장의 뒤를 이어 외동딸 민승기(34)씨는 미국 존스홉킨스대를 졸업 후 미국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의료 관련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 대를 이어 의료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의사란 헌신하고 봉사하는 직업이다. 의사를 택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이라서다.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돈이나 권력이 돼선 안 된다는 민 원장을 만났다.


사회적 기업 창업한 딸 처음엔 이해 못해
아버지 세대와 나의 진료 방식이 다르듯
새 시대 의사 역할일 수 있다고 생각해


부모의 꿈과 생각 강요 말고 소통해야
믿어주는 데 그치지 말고 생각을 나눠야
대화로 아이 장점 발견하고 키울 수 있어



의사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자란 민병진 원장은 어릴 때부터 의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일만큼 보람된 건 없다”는 말을 밥상머리에 들으며 자랐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나도 아픈 사람을 돕는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에게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아버지의 병원을 갔다가 빌딩 입구부터 2층 병원까지 가득찬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의료사고라도 발생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알고보니 갑작스레 유행한 겨울독감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었다. 그날 하루 동안 이곳에 몰려든 환자는 300명이 넘었다. 그날 아버지는 단 한 명의 환자도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종일 선 채로 늦은밤까지 진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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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원장의 할아버지인 고 민영성 원장의 가족사진. 가운데 빨간색 원안의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1대 민영성 원장. 뒷줄 맨 왼쪽이 2대 민건식 원장


“외과의사였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환자에 대한 헌신과 정성을 항상 강조하셨다.”

의사가 귀하던 시절, 할아버지 민영성 원장의 집은 밤낮 없이 문을 두드리는 응급 환자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피를 흘리고 소리를 지르며 문 두드리는 환자가 대부분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불편한 기색 없이 정성껏 환자들을 맞았다. 그것이 환자에 대한 의사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민영성 원장의 신념은 아들 민건식 원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민병진 원장은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피 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치과대를 선택했다. 학창시절에는 일 년에 수차례 의료봉사를 떠났고, 1986년 병원 개업 이후엔 목회자들에게 치료비의 40%를 할인해 주고 있다. 해외 무료 진료도 한다. 현재 그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잘 가지 못하는 해외 거주 한인들을 위해 통증 부위를 사진을 찍어 전송하면 무료로 진단을 해주는 시스템을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개발 중이다.

민 원장의 딸 승기씨가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부모님과 함께 선교 활동을 위해 찾은 말레이시아에서 발가벗은 채 본드를 흡입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승기씨는 “도대체 무엇이 이런 어린 아이들을 괴롭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리고는 이들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 고민이 의사가 되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겠다는 구체적 다짐으로 발전했어요”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치과의사의 길은 선택한 건 어머니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치과의사가 되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어려운 사람들은 도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에 치과대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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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육군병원에서 연수중인 민건식 원장.


-4대가 의사인 집안은 흔치 않다.

“(민병진 원장) 겉으로 보기에는 4대가 같은 분야에 종사하니 갈등이 없을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고집이 아주 센 편이었다. 미국 하버드대 유학을 마치고 86년 서울 광화문에 교정치과를 개원했다. 아버지가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던 건물의 1층이었다. 아버지는 밀려드는 환자를 보살피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환자가 찾아와도 단 한 명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점심시간인 낮 12시~2시엔 병원 문을 닫았다. 환자도 오후 5시30분까지만 받았다. 교정과는 이비인후과와 달리 응급환자가 없는 데다 늦게까지 병원을 운영하는 것보다 의사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환자 한 명 한 명을 정성스럽게 진료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처음엔 내 방식을 못마땅해했지만 오랜 대화를 통해 병원 직원들의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환자들에게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해 아버지를 설득했다.”
 
-딸은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 같다.

“딸 승기도 나 못지않게 고집 센 의사다. 미국에서 치과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하와이에서 의사로 일하던 딸은 한국에 돌아와 ‘진료’가 아닌 ‘창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사업을 택한 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딸과 대화를 나누면서 결국 딸도 나도 ‘봉사와 헌신’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걸 깨달았다. 딸은 현재 사회적 기업 ‘위드 마이’의 대표다. 이 기업은 친환경 의료제품이나 위생제품을 만들고, 그 수익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지속 가능한 기부’를 목표로 한다. 이 회사가 만든 치약 하나를 구매하면 다른 하나는 필리핀 파야타스로 보내 기부한다. 치과의사가 되어 환자를 돕는 것도 좋지만 의료지식을 활용해 위생상태가 열악한 곳에 의료제품을 공급하는것도 그들을 돕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와 나의 진료 방식이 다른 것처럼 딸이 하는 일도 새로운 시대에 의사들이 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일 수 있다. 그동안 나를 비롯한 기성 의료인들이 이루지 못한 차원의 봉사를 딸이 열어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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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진 원장의 가족사진. 앞줄 가운데가 민건식 원장. 뒷줄 맨 왼쪽이 경기고 재학 시절의 민병진 원장.


‘의료인으로서 헌신하는 삶’이 4대가 공유하는 가치라면 ‘음악’이라는 취미는 이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연결 고리다. 부친 민건식 원장은 병원 지하실에 밴드 연습실을 마련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남달랐다. 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어니언스’와 가수 김정호가 이곳에서 음악 연습을 하기도 했다. 집에 모아놓은 수만 장의 LP판 모음은 KBS 라디오에서 급할 때 빌려갈 만큼 다양한 종류와 방대한 양이었다. 아들 민병진 원장의 입학식날 처음 준 선물도 ‘Let it be’가 수록된 그룹 비틀즈의 LP판이었다.

민병진 원장 역시 주변에서 “의사가 아니면 음악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났다. 대학 시절엔 현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과 그룹 ‘들개들’을 결성해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도 했다. 부자는 88년 청담동의 한 호텔에서 합동 공연도 했다. 아버지 민건식 원장은 클라리넷을, 아들 민병진 원장은 베이스를 들고 ‘Stranger on the shore’라는 곡을 연주했다.

딸 승기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틈틈이 모아 특별한 날 CD를 만들어 선물한다. 승기씨는 “노래를 주제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아버지의 취향을 알게 된다. 또 노래를 매개로 속 깊은 이야기도 터 놓을 수 있어 음악은 우리 가족에게 윤활유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딸 승기씨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안 했나.

“내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믿어줬다. 대학시절 동기들이 시험준비와 실습준비 등으로 정신없이 바쁘던 때였는데 아버지에게 ‘음악이 너무 하고 싶으니 기타를 한 대만 사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음악 활동을 취미로 하더라도 네가 해야할 기본적인 의학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며 선뜻 기타를 사줬다. 아버지가 먼저 나에게 그러한 믿음을 보여주었기에 나 역시 딸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면서 키웠다. 딸에게 늘 ‘승기는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만 했다. 성적은 물어보지 않았다.”
 
승기씨는“아버지의 그런 믿음 덕택에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볼 시간이 많았고, 고민을 통해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선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대했던 성적이 안 나와 속상해 하면 부모님은 언제나 ‘네가 최선을 다했다면 낙제를 해도 괜찮다’고 하셨죠. 그럴 때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말문이 닫히곤 했어요. 가끔은 내 성적에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어요. 내가 요청하기 전에는 과외 선생님도 안 구해주셨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거나 과외가 일상이었다면 오히려 공부와 담을 쌓지 않았을까 싶어요.”

승기씨는 부모와 자녀의 역할에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는 것은 자녀의 책임인데 어머니가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고 어머니 탓을 하는 경우를 들었다.

“그 경계가 애매할 경우 자녀의 책임감이 굉장히 약해집니다. 모든 책임을 부모가 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는 본인의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부모를 탓하게 되는 거죠. 그 결과 부모는 자녀를 위해 에너지는 있는대로 소모하고 감사는 커녕 외면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녀가 할 일을 부모가 대신 해주지 말고 자녀의 책임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럴 때만이 자신을 돕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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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극동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나의 신앙’에 함께 출연한 민병진·승기씨 부녀.


-민 원장 본인의 자녀 교육 철학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억압이 아닌 소통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녀들에게 강요한다. 이런 강요는 자녀와 부모 사이에 오해와 불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자녀와 의견이 다르다며 대화를 단절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해선 안 된다. 자녀를 전적으로 믿어주되 거기서 그치지 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믿음이 바탕이 된 대화를 통해 부모는 자녀의 재능과 장점을 발견할 수 있고, 자녀 역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이라서 의사를 선택했다고 했는데.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일정 기간 살다가 사라진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이 한정된 기간 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저 평생 돈만 벌다가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날 것인지 말이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보다 왜 그 직업을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돈을 잘 벌 것이라는 기대로 직업을 선택하는 건은 잘못된 일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사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 사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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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진 원장이 딸 민승기 대표에게 쓴 편지. 평소 잘 표현하지 못하던 딸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글로 담았다.


-영웅이나 위인들을 말하는 건가.

“모든 영웅·위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모든 걸 깨닫고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위인과 영웅들에게는 훌륭한 부모나 멘토가 있었다. 그들은 자녀가 공부 잘하고 출세하기만을 원하지 않았다. 자녀들의 장점을 알아내고 계발시켜서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통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일례로 에디슨은 어릴 때 학교에서 교육을 포기한 학습 저능아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에디슨이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그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학교가 포기한 아이에 대해 낙담하거나 포기한 게 아니라 아들의 능력을 찾아내고 지지했다. 그 결과 에디슨은 인류가 어두운 밤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에디슨의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자녀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건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다. 그래서 공부하라고 잔소리도 하는 거 아닐까.

“매일 공부하라고 들볶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중 공부 잘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 억지로 공부시키려는 부모는 자녀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뿐이다. 그 스트레스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부모의 잔소리가 없었으면 공부나 재능 개발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다.”

-잔소리를 안 하면 자신의 진로을 더 잘 선택할 수 있나.

“물론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는 고3 때 성적에 의해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성적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니까 공부 잘하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진로 선택을 잘할까. 그렇지 않다. 대학 진학할 때는 언제나 당시 유명 학과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졸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는 그 선호 직업이 그렇게 좋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60~90년대까지만 해도 직업군은 많지 않았고 직업의 선호도 자주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고 직업의 세계도 바뀌었다. 미래에는 세상이 더욱 빠르게 변할 것이고 오늘의 유망 직업이 내일의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자녀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길은 부모로서 자녀의 장점을 보는 눈과 자녀의 이야기를 듣는 귀를 갖는 것이다.”
 
-의사의 사명은 무엇인가.

“헌신(Devotion), 정체성(Dignity) 그리고 후학 양성(Institute)이 의사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헌신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시간과 정성을 조금씩 더 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무료 진료나 해외 봉사 등으로 그 외연을 차근차근 넓혀가면 된다. 정체성은 말 그대로 의사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걸 늘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몇 의료인이 돈 몇 푼 때문에 정체성을 버리고 있어서 안타깝다. 미용 목적의 수술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사람을 치료하고 살린다는 의료인의 기본 정체성을 잊어버리면 더 이상 의사라고 부를 수 없다.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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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진 원장
1952년 서울 출생
 71년 경기고 졸업
 80년 서울대 치과대학 및 교정 대학원 졸업
 80~82년 하버드대 교정과 대학원 수료
 82~84년 보스턴대 대학원 박사
 85년 미국 치과의사 면허 취득
 85년~현재 민치과의원 원장
좌우명: 정직과 성실
인생을 바꾼 책: 성경(지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주는 책)

민승기 대표
1982년 미국 출생
2004년 존스홉킨스대 보건학과 졸업
2008년 뉴욕대 치과대 졸업
2008~2009 하와이 보건소 레지던트
2009~2010년 하와이 심미치과 근무 및 알로하메디컬미션 봉사활동
2010~2013년 워싱턴 심미치과 근무
2015년 사회적 기업 ‘위드 마이’ 창업
좌우명: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인생을 바꾼 책: 『고통의 문제』(C.S. 루이스)

 
글=김민관 기자kim.minkwa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최고의 유산]
▶장학 사업하며 행복하다던 아버지, 나눔이 최고의 가치

▶나눔이 축복이라던 어머니, 세상 살리는 디자인하는 아들
▶서울대 나온다고 행복할까, 자녀에게 자유를 주세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져라, 그래야 아침 일찍 눈도 떠져
▶아이가 뛰는 인생, 부모가 대신 뛰겠다 나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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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관 기자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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