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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당신의 역사’ 시리즈로 본 한국 현대사, 그리고 당신

1 이 기사는 2015-09-23 오전 00:10: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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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이 완성됐습니다. 지난해 8월 시작한 ‘당신의 역사’는 보통 사람의 역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퍼즐을 맞추는 인터뷰 시리즈 였습니다. 48개의 인생 퍼즐을 모두 맞춰보니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한 편의 영화가 됐습니다. 등장인물은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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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든 역사입니다
 
처음 퍼즐 맞추기를 시작할 때의 장면은 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배경으로는 골조 공사를 마친 공사 중인 아파트가 있었고요. 오른쪽 완성된 퍼즐은 완공된 아파트의 현재 모습입니다. 이제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삽니다.  밭을 갈던 소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군대 지프차를 타고 피란을 떠난 고등학생은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됐고, 종로 뒷골목에서 미군 부대에서 나온 영문 플레이보이를 팔던 노점상은 영어 책방 주인이 됐습니다. 새로 개장한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에서 빨간 스케이트화를 신고 얼음을 지치던 소녀는 한국 피겨스케이터들을 지도하는 코치가 됐습니다. 파독 광부로 지하 1000m 땅속에서 석탄을 캐던 이는 교수가 돼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들 삶의 조각들을 모아 이으니 한국 현대사가 완성됐습니다. 아픔과 슬픔과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이 퍼즐 안에 녹아 있습니다.  
 
‘당신의 역사’로 본 한국 현대사

1950년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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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1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온 가족이 수원 이모집에 가서 6개월을 숨어 지냈다. 1.4 후퇴를 한달 여 앞두고 막내인 나만 군대 지프차를 얻어타고 부산으로 피란했다. 어머니가 가서 공부하라며 가방에 『알기 쉬운 대수학』 교재를 넣어줬다. (학원장 서진근)

1953년 폐허가 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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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 끝난 서울은 폐허였다. (입양아 대모 조병국)
○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쓰레기로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었다. 잇자국 남은 먹다 남은 사과는 감사할 정도였다. (영어 헌책방 주인 최기웅)

1955년 넝마주이 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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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가겠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고리대금으로 쌀 한 가마니 값을 구해왔다. 그 돈으로 서울행 기차를 탔다. 넝마주이·신문배달·구두닦이를 하며 학비를 모았다.(새마을운동 담당 류태영)

1957년 전쟁의 흔적
○ 민간에 설악산이 개방됐지만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새벽 4시25분에 첫차를 타면 오후 5시쯤 속초에 도착했다. 거기서 9~10시간 걸으면 설악산 초입에 있는 신흥사에 닿았다. 등산길이 없어서 지금 4시간 코스가 당시엔 2박 3일 걸렸다. 6·25 전쟁 흔적도 있었다. 가다보면 시신들을 볼 수 있었다. 대청봉 근처에는 수류탄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산장지기 유창서)

1958년 희망과 자부심
○ 롤에 은박지를 씌우고 연탄불에 달군 집게로 파마를 했다. 머리가 타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헤어디자이너 하종순)
○ 홍대 미술대에 이중섭의 작품 ‘흰 소’가 걸려있었다. 가난했고 거지 같은 몰골이지만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과 희망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냈다. 당시 신촌은 비만 오면 뻘밭이 됐다. 화랑이나 전시장이 없어 다방에서 전시회를 했다.(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오광수)

1959년 라디오 드라마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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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이 하는 시간이면 여자 목욕탕에 사람이 빠져나가고 거리에 사람이 텅텅 빌 정도였다.(성우 고은정)

1960년 4·19혁명
○ 4·19혁명 당시 손님을 태우고 종로로 가고 있었는데 을지로 6가쯤 오니까 갑자기 학생 20여 명이 차 앞을 가로막고 내리라고 했다. 다 내리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거리에는 시위하던 학생들이 경찰이 쏜 총에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내 옆에서도 사람이 픽픽 쓰러졌다. 잃어버린 버스는 일주일 뒤에 수소문해서 찾았는데 차 안이 온통 피범벅이었다.(버스기사 정전진)

1963년 열악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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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과 전문의로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하루 100명씩 환자를 봤다. 병원이 아니라 수용소였다. 기저귀감이 없어 기저귀 발진이 심했고 고무줄이 없어서 링거줄을 잘라썼다. 하루 사망진단서를 14번 쓴 적도 있었다.(입양아 대모 조병국)

1964년 광부 파독, 베트남전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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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아돌프 탄광에 도착했다. 지하 1000m를 내려가고 거기서 또 3~4km를 전철로 이동해야 작업장이 나왔다. 빛이 들지 않는 암흑 속에서 헤드랜턴에 의지해 8시간 동안 일했다. 공기는 탁한데 너무 더워서 마스크를 쓸 수가 없었다. 천장 붕괴 사고로 일주일 만에 동료를 잃었다. (파독 광부 권이종)
○ 베트남 전쟁에 통역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전투 중에 아군이 죽으면 총알을 뚫고 동료가 시신을 가지러 갔다. 그 와중에 셋이 더 죽었다. 그걸 보고 아무도 바보 같다 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인간이었다.(번역가 안정효)
○ 겨울이면 공터와 논밭에 물을 채우고 얼음을 얼려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었다. 창신동에 동대문 스케이트장이 생겼다.(피겨스케이터 이인숙)

1965년 한·일 국교 수교
○ 법의학을 알고 싶었지만 배울 곳이 없었다. 일본 도쿄대 후루하다 다네모도 교수와 3년 동안 편지로 법의학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사제지간이 됐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 후 일본 암 학회에서 처음 후루하다 교수를 만났다.(법의학자 문국진)

1967년 고된 서울살이
○ 미군부대 쓰레기장을 돌며 수거한 영어 책과 컬러 잡지를 종로 뒷골목에서 팔았다. 잘 팔린 책은 플레이보이랑 미국 백화점 카탈로그였다.(영어헌책방 주인 최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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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 많은 젊은이가 서울로 왔다. 소녀들은 여공이 되거나 버스안내원. 아니면 식모살이를 했다. (주부 허정희)

1971년 새마을운동
○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버스회사 정비견습공으로 들어갔다. 폐차된 버스 가운데를 막아 한쪽엔 정비사, 한쪽엔 버스 안내양이 먹고 자며 생활했다.(자동차 정비사 박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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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양들은 문 양옆 손잡이를 잡고 달리는 버스에 매달려 다녔다. 그러다 버스에서 떨어져 죽는 안내양도 많았다.(버스기사 정전진)
○ 덴마크 부흥운동을 모티브 삼아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심해진 도·촌 격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었다.(새마을운동 담당 류태영)

1972년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
○ 초등학교 학생들이 넘쳐났다. 한 반 50~60명은 기본이었다.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2부제 수업을 하는 곳도 많았다. 그때는 아이들 조용히 시키고 똑바로 앉혀서 칠판만 쳐다보게 하는게 이상적인 교사의 역할이었다.(교사 심옥령)

1973년 장발 단속, 미사일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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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본격적인 장발 단속이 시작됐다. 남자라면 누구나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기에 이용실에 손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조수 2~3명을 데리고 일할 정도로 일손이 모자랐다.(이발사 이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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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에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만들라고 은밀하게 지시했다. 미국 전투기 제작업체 노스롭 도서관에 가서 항공 미사일 자료를 복사했다. 복사를 하루 3시간씩 6개월 동안 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78년 국내 최초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백곰’을 완성했다.(무기 개발 안동만) 

1974~76년 민청학련 사건, 레슬링 인기
○ 민청학년 사건이 터졌다. 고대신문 편집장으로서 학보 1면에 기사 대신 ‘구속 학생 석방하라’는 문구만 인쇄하고 몸을 피했다. JTBC 전신인 동양방송 기자를 만나 시국선언을 녹음하고 저녁 뉴스에도 나왔다.(북 디자이너 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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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체육관 1기생 모집공고가 났다. 키 180cm이상, 몸무게 80kg 이상이어야 했다. 프로레슬링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국민영웅 김일이 일본 미국 레슬러를 눕히는 모습에 국민들이 열광했다.(레슬러 이왕표)
○ 프라자 호텔이 최초로 와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소믈리에라는 직함을 만들었다.(소믈리에 서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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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가 개봉됐다. 서울에서만 28만명이 들어서 그해한국영화 1위, 외화 통틀어 2위의 흥행기록을 세웠다.(태권V 감독 김청기) 

1977~80년 10·26, 5·18, 과외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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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에서 운전기술자 겸 자동차 정비반장으로 일했다. 돈 많이 벌었다. 70년대 초에 귀국해서 독산동이랑 개포동에 집을 두 채나 샀다.(버스기사 전정진)
○ 10·26 사태로 들어선 신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미사일 사업을 중단시켰다. 하루 아침에 국방과학연구소 직원 3분의 1이 직장을 잃었다. 하지만 83년 버마 아웅산테러 사건으로 다시 사업을 부활시켰다. 새로 연구원 100여 명을 뽑았다.(무기 개발 안동만)
○ 과외금지가 선포됐다. 중앙정보부가 유명 과외 강사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긴급체포돼 용산 서빙고 건물 독방에 갇혔다가 풀려났다.(학원장 서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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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사관 직원이라고 속이고 광주에 들어갔다. 광주는 전쟁터였다. 광주 시민군 대표가 발표한 담화문을 영어로 통역해 외신기자들에게 전했다. 해외 추방 조치를 피하려 문무대에 자원했다. 외국인이 군 훈련을 받았다며 상을 줬다. 상을 받고 집에 오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광주 사람들을 배신한 기분이었다.(의사 인요한)

1981년 프로야구 개막
○ 대우가 국내 대기업 최초로 기혼여성을 고용하면서 여성 취업이 탄력받기 시작했다. 경력사원 30명 모집 공고에 680명이 지원해 22대 1의 경쟁률를 기록했다.(현대차 김화자)
○ 장애인복지법 전신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생겼다. 보건사회부에 첫 장애인 복지 전담부서가 생겼다.(청각장애 파티시에 안준호)
○ 집배원은 글 못 읽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대신 답장을 써줬다.(집배원 임명래)

1982~83년 최고의 간식은 빵
○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포볼을 볼넷으로, 데드볼을 몸에 맞는 볼로 용어를 바꿨다.(해설자 허구연)
○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을 시작했다. 먹거리가 드물던 시절이라 빵은 매우 인기였다.(리치몬드학원장 권상범)
○ 한국과학기술원이 국민신발규격정리 사업을 시작했다. 250, 260, 270 등 규격이 정해지면서 손님들이 어느 매장에서나 자신에게 맞는 신발을 찾을 수 있게 됐다.(구두장인 서문수용)

1984년 동물원 돌고래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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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원 동물원을 과천으로 이전했다. 돌고래쇼를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펜스가 무너지기도 했다. 돌고래쇼만큼 풀장 관리도 힘들었다. 염분 농도를 맞추기 위해 소금을 붓고 이끼를 긁어내고 관람객들이 던진 쓰레기를 건져내는 것도 사육사의 몫이었다.(사육사 전돈수)

1985년 ‘들국화’ 1집 발매, 자동차 100만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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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국화와의 작업은 천재와 호흡한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인권이가 내뱉으면, 성원이가 베이스를 치고 들어오고, 찬권이가 드럼을 두둥탁 치기 시작하면서 노래 ‘행진’이 완성됐다. 들국화 1집이 히트했다.(음반제작자 김영)
○ 자동차 100만대 시대가 열렸다. 자동차 판매가 급증할 때라 전시장에 나가만 있으면 2~3대 파는 건 기본이었다.(자동차세일즈우먼 김화자)
○ 광어 양식이 성공했다. 90년대 들어 어민 대상 양식 교육을 시작했다. 귀한 생선 넙치가 국민 횟감 광어가 됐다. (수산과학연구원 조기채)

1986~88년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 건국대에서 대학생 2000명이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발대식’을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걸 알면서도 막아야 했다. 주차된 차 안으로 학생들을 피해 숨어들었다가 차가 반파될 정도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쇠파이프로 맞았다. 건대사태는 학생 1289명이 구속 송치된 사건으로 최대 단일 사건 구속 기록을 세웠다.(경찰 이관범)
○ 백남준이 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한 데 이어 86년 아시안게임에서 ‘바이바이 키플링’을 선보였다.(쌈지길 만든 천호선)
○ 그룹 소방차의 승마바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춤추기 편하고 신선한 멋이 풍기는 옷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고민하다가 만든 디자인이다. 당시 클럽엔 승마마지를 입은 사람들도 가득했다.(패션디자이너 장광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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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올림픽을 지나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옷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옷을 만들어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됐다. 90년 로마, 이탈리아, 프랑스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빨리 더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양복점 사장 이영원)
○ 혜화동에 가배 보헤미안이라는 커피숍을 냈다. 하지만 늘 데모하는 학생들로 혜화동 거리는 최루탄 가스를 마셔야 했다. 데모 없는 날은 자동차 매연이 심했다.(바리스타 박이추)

1990~91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대우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영훈초의 영어몰입교육이 자녀를 세계인으로 키우고픈 학부모 마음을 흔들었다.(교사 심옥령)
○ 현재 서울패션위크의 전신인 스파(SFAA) 컬렉션을 열었다. (패션디자이너 장광효)

1996년 삼풍백화점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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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9일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처음엔 장난신고인 줄 알았다. ‘설마 백화점이 무너졌겠나’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아비규환이었다. 다리가 부러져 기어나오는 부상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부상자. 걸을 때마다 사상자가 발에 걸릴 정도였다.(소방관 백균흠)
○ MBC 예능 프로그램 ‘양심냉장고’ 첫 회에 장애인 이종익씨가 등장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PD 김영희)

1997~98년 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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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이 되니 부도 기사들이 쏟아졌다. 대우 직원으로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돌아오니 세상이 바뀌었다. 싸늘했다. (재즈클럽 대표 임재홍)
○ 인수합병으로 각국 금융가들이 한국에 많이 왔다. 그들이 고급 호텔에 많이 묵었다. 국민들은 어려웠지만 호텔은 호황을 누렸다. (도어맨 손광남)
○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을 청담동에 열었다. 사람들이 ‘아가씨 나오냐, 룸은 있냐’라고 물었다. 재즈 뮤지션을 모아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정성조·이정식 같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섰다.(재즈클럽 대표 임재홍)

2001~2002년 국제 비보이 대회 우승
○ 한국 대표팀 최초로 국제 비보이 대회에 참석해 베스트 쇼 상을 받았다.(비보이 하휘동)
○ 청각장애를 딛고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 호텔 베이커리 파티시에가 됐다.(파티시에 안준호)

2004년 김연아 헝가리대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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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가 헝가리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아사다 마오는 신동 소리를 듣는 선수였는데 김연아가 그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국제대회 심판들은 딱딱 끊어지는 아사다의 연기보다 길게 이어지는 연아의 연기를 더 좋아했다.(피겨스케이터 이인숙)

2007~2009년 화교 출신 호텔 중식부문 임원 등장
○ 화교 출신 중국 요리사 형제 중 동생 여경옥 셰프가 롯데호텔 중식 부문 이사가 됐다. 요리사가 대기업 임원이 된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중식 셰프 여경래·여경옥)
○ 크리스마스 이브에 버려진 아기를 구해서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아이는 지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경찰 이관범)

2012년 홍대 리치몬드 과자점 폐점
○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불법포획 논란에 휩싸이면서 중단했던 돌고래쇼를 돌고래 생태설명회로 이름을 바꿔 재개했다. 묘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바뀌었다.(사육사 전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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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30년 가까이 홍대 앞에 있던 리치몬드과자점의 문을 닫았다.(리치몬드학원장 권상범)

2013~2015년
○ 큰아들과 한식당을 한다. 총주방장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일하다보면 언젠가 내 집을 다시 찾을 날이 오지 않을까.(주부 허정희)
○ 고객들이 휴대전화로 직접 운전사를 부르기 때문에 도어맨이 고객 얼굴만 보고 차량 번호를 외우는 게 별다른 장점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나는 외우고 또 외운다.(도어맨 손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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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을 돌며 요리 대결을 펼치는 한식대첩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요리 프로그램이 전 TV 프로그램으로 확산됐다.(요리연구가 심영순)
○ 요리연구가 음식평론가 셰프 등이 내 어란 비법을 배우겠다면 찾아오기 시작했다.(어란 명인 김광자)


‘당신의 역사’를 만든 48인

1. 30년 도어맨 손광남 리츠칼튼서울 계장 2. 한국 최초의 헐리우드 진출 배우 오순택 3.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 4. 영어헌책방 ‘포린북스토어’ 최기웅 사장 5. 심옥령 청라달튼외국인학교 교장 6. 가장 오래된 이발소 성우이용원 이남열 사장 7. 현대차 최초 여성 임원 김화자 전 이사 8. 중식 셰프 여경래 그랜드 앰배서더호텔 홍보각 대표와 여경옥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 상무 9. 허정희 가정식 밥집 빠르크 총주방장 10. 서진근 하늘교육 회장 11. 김영 동아기획 대표 12. 백균흠 강남소방서 진압대장 13. 자동차정비 1호 명장 박병일 카123텍 대표 14. 국내 1호 법의관 문국진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15. 청각장애 극복한 안준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파티시에 16. 파독광부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17. 이관범 전 서부경찰서 경위 18. 안동만 전 국방과학연구소장 19.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카페 보헤미안 대표 20. KBS 성우 1기 고은정 21. 로보트 태권V 김청기 감독 22. 35년 경력 정전진 버스(420번 )운전기사 23.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소장 24. 미스코리아 120명의 ‘원장님’ 하종순 마샬뷰티살롱 회장 25. 국내 1호 소믈리에 서한정 한국와인협회 초대 회장 26. 천호선 전 쌈지길 대표 27. 이인숙 전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 28. 김영숙 한국여성태권도연맹 자문위원 29. 1세대 번역가 안정효 작가 30. 요리연구가 심영순 31. ‘설악산 반달곰’이라 불린 전 권금성산장지기 유창서 32. 전돈수 서울동물원 사육사 33. 중국 진출한 김영희 전 MBC PD 34. 청담동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 임재홍 대표 35. 프로야구 해설가 허구연 36. 34년 집배원 임명래 37. 1호 해외파 패션모델 김동수 동덕여대 교수 38. 40년 프로레슬러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 39. 입양아 6만 명보살핀 조병국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 명예원장 40. 새마을운동 담당 류태영 박사 41. 광어 양식 개발한 조기채 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 42. 디자이너 장광효 카루소 대표 43. 30년 구두 장인 서문수용 44. 권상범 리치몬드 제과기술학원 원장 45. 비보이 하휘동 46. 어란 명인 김광자 47. 북 디자이너 정병규 정병규출판디자인 대표 48.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관장 

메트로G팀 gang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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