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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역사] 구십 평생 쓰다듬은 전통의 맛, 이제야 비법 알려달라 줄 섰네

1 이 기사는 2015-09-02 오전 00:05: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어란 명인 김광자씨
 
김광자 명인이 어란에 참기름을 바르고 있다. 감칠맛을 더하고 장기 보관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뒤집고, 참기름 바르는 작업을 반복한다.


미식의 고장 전라도에는 손바닥만 한 한덩어리에 쌀 한 가마니 값의 귀한 음식이 있다. 바로 어란이다. 어란의 사전적인 의미대로라면 ‘생선의 알’이니 민어 알이나 청어 알로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미식가들은 숭어 알로 만든 어란을 최고로 친다. 그중에서도 영암 영산강 하구에서 잡힌 숭어는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던 귀한 음식이었다. 영암읍 서남리에는 스무 살 때부터 어란을 만든 명인이 산다. 1999년 당시 해양수산부(국토해양부)가 수산 분야에서 유일하게 명인으로 선정한 김광자(90) 명인이다. 스무 살에 시집온 김씨는 그로부터 70년 동안 어란을 만들었다.


숭어 어란으로 국내 유일 수산식품 명인
“한밤중에도 어란이 부르면 나가 봐야지”
수만 번 문지르며 말리느라 지문 사라져


 
김광자 어란은 4~5월 참숭어가 밴 알로 만든다. 눈가에 황금빛 테두리를 두른 참숭어 알은 크고 묵직해 맛이 좋다.
전남 영암 서남리 대로변에 위치한 ‘어란의 집’에 들어서자 고운 모시 한복을 입은 김광자(90) 명인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김씨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술상부터 차렸다. 얘기를 시작하려면 일단 어란 맛부터 봐야 한다고 했다. 김씨가 직접 담갔다는 약술에서는 대추와 모과의 향긋한 향이 났다. 접시에는 얇게 저민 어란이 꽃처럼 펼쳐져 나왔다. 김씨가 시킨 대로 작은 어란 조각을 앞니에 물고 살짝 깨물었더니 입안에 고소한 기름기가 퍼졌다. 느끼하지 않은 묵직한 지방질 덩어리가 사르르 녹았다. “맛있다”고 하니 김씨가 얼굴 가득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이 맛을 알아야 얘기를 하지”라며.

어란이 뭔지도 몰랐던 새색시

광주 과수원집 막내딸로 부족함 없이 자란 김씨는 스무 살에 시집올 때까지 해도 어란이 뭔지 몰랐다. 아버지는 막내딸을 애지중지 키웠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일본 소학교에 다니며 수학여행도 일본으로 다녀왔다. 학창시절 배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결혼 후에도 일본에서 고위 공무원이 파견을 나오면 통역을 맡았다.

예쁘고 똑똑했던 소녀의 유복한 삶은 영암으로 시집오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어부 집안인 건 알았지만 여자들이 밤새우며 어란 만드는 집인 줄은 몰랐지.” 김씨가 70년도 더 된 옛날을 회상했다. 어부였던 시아버지가 잡아 온 생선을 다듬는 것은 기본이고, 봄이 되면 시어머니 옆에 앉아 수백 마리 숭어의 배를 갈랐다. 속이 메슥거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괴로운 신혼이었다. 한량이었던 남편은 아내의 고생을 모른 척했다. 학창시절부터 호기심이 넘쳐 질문을 달고 살았던 김씨지만 엄하고 퉁명스런 시어머니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건 엄두가 안 났다. 주눅이 든 며느리는 10년 넘게 손에 쥔 생선이 숭어인지 민어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것만 했다. 김씨는 “물어볼 줄을 몰라서 남들이 일 년 걸려 배울 기술을 수십 년 걸려 배웠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가세가 기울기 전까지 술을 좋아했던 시아버지와 남편 때문에 집에는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손님이 오면 직접 담근 술과 얇게 저민 어란을 접시에 담아 술상을 차리는 건 김씨의 몫이었다. “귀한 줄 모르고 냈는데 자꾸 사람들이 와서 어란을 찾는 거야. 시어머니도 어란 내는 걸 아까워하지 않으셨지.” 고부가 만든 어란은 차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손이 많이 가니까 지금은 만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 그때는 주변에 제법 어란 만드는 집이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우리 집 어란만 사갔어.”

하굿둑 공사로 사라진 영암 숭어
 
아들 내외와 손주, 큰딸 가족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이제 어란은 온 가족이이 함께 대를 이어 만든다.
김씨는 시어머니 몰래 각종 고서를 뒤적이며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꾸 어란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다. 숭어는 생선이 지천인 남도에서도 유독 식담(食談)이 많은 생선이다. ‘숭어 껍질에 밥 싸먹다 논 판다’, ‘겨울 숭어가 머물던 뻘만 먹어도 달다’는 얘기도 있다. 숭어가 그만큼 맛있는 생선이라는 뜻이다.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숭어를 극찬하는 대표적인 고사다. 책에서는 숭어를 두고 빼어날 수(秀) 자를 붙여 ‘수어’라고 표기한다.

일본 고서 『어신사록(漁新士錄)』에 따르면 어란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귀하게 먹던 음식이다. 9세기 중국에서는 어란을 ‘우고이단’이라 부르며 황실에서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조선시대 어란은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이었다. 반가에서는 명절이나 제사 같은 특별한 날에 올리던 음식이었다.

1990년대까지 영암은 어란을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영암 앞바다에서 진흙 먹고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몽탄 숭어가 잡혔기 때문이다. 진흙 속 미생물을 듬뿍 먹은 몽탄 숭어는 영양분이 풍부하고 어란으로 만들면 더 감칠맛이 났다. 지금은 영산강 하굿둑 공사로 잡을 수 없는 생선이 됐다.

대신 숭어가 알을 배는 4~5월이 되면 생선 장수들이 지금도 줄지어 김씨 집 대문을 두드린다. 해남에서 온 숭어, 강진 숭어, 진도 숭어도 있다. 김씨는 한두 군데서 숭어를 대량으로 납품받는 대신 ‘자유경쟁’ 하는 걸 택했다. 두 마리 가져오는 이도 있고, 열 마리 넘게 가져오는 이도 있다. “그걸 다 사들이는 게 아니야. 딱 봐서 배가 땅땅하게 부풀어 올라 묵직하고, 눈가에 황금빛 테두리를 두른 참숭어만 사는 거야.”

배를 갈라보면 숭어 알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암놈인 줄 알았는데 수놈이라 알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알이 기가 막히게 예쁜 것도 있고, 양쪽 모양이 비대칭인 것도 있다. 한쪽이 까맣게 썩은 것도 있다. 어떤 모양이 나와도 김씨는 실망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숭어나 같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10년 전부터 어란 만드는 일을 돕는 아들 박승옥(62)씨와 며느리 이옥란(57)씨는 배를 가를 때 가위를 사용한다. 김씨는 스무 살 때부터 쓰던 칼을 70년 가까이 쓰고 있다. 숭어 배를 일직선으로 가르다 끄트머리를 살짝 사선으로 비틀어야 알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터지지 않는다고 했다. 세 사람 중 숭어 배 가르는 작업을 완벽하게 해내는 건 김씨뿐이다. 1mm라도 흠집이 생기면 그 틈으로 작은 알들이 수백 개씩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어란으로서의 모양을 갖추기 힘들다.

명인의 손엔 지문이 없다

김씨는 시어머니에게 배운 것과 책에서 읽은 것,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완성했다. 내장과 핏줄을 제거하기 위해 소금물에 담가 두 시간 기다린 뒤 다시 알에 적정 염도를 입히기 위해 희석한 소금물에 24~26시간 담가둔다. 소금은 신안 천일염을 쓴다. 어란 상태에 따라 10년 된 소금을 쓰기도 하고, 그보다 빳빳한 새 소금을 쓰기도 한다. 간장에 절이면 어란은 좀 더 맛있고 짭짜름한 맛을 갖게 된다. 일본 3대 진미인 카라스미(어란)는 소금으로만 절이지만 우리나라 어란은 간장에 절여 더 감칠맛 나고 깊은 맛이 난다. 이때 쓰는 씨간장은 시어머니 때부터 만들어두고 쓰던 족히 수십 년 된 간장이다. 씨간장에 새로 만든 간장을 섞어 어란에 맞는 비율을 찾는다.

맛의 비법은 자연 건조다. 봄철 김씨가 작업하는 2층 주택에는 집안 곳곳과 옥상에 선반 있는 건조대가 설치된다. 소금과 간장에 절인 어란을 차곡차곡 눕히고 참기름을 바른다. 빼곡히 누워 있는 어란의 모양은 하나같이 예쁘지만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김씨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엄지와 검지로 튀어나오고 모난 모양을 잡아준다. 김씨는 “한밤중에도 어란이 부르면 방문을 열고 나가 쓰다듬고 다독거린다”고 했다.

옛날에는 참기름을 수십 번 발랐는데 지금은 냉장 기술과 진공 포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횟수가 줄었다. 소금·간장·기름에 절은 생선을 수백 번, 수천 번 문지르다 보니 “지문이 닳아 없어졌다”며 김씨가 만질만질한 손가락을 보여줬다. 이렇게 완성한 어란은 5월 말에서 6월 초 포장을 한다. 원래 크기보다 약 3분의 1정도 줄어든다. 보기 좋은 갈색 덩어리지만 먹기 좋게 얇게 자르면 꿀처럼 투명하고 깊은 빛을 띤다.

어란 한 덩이에 쌀 한 가마니

1950년 한국전쟁 후 김씨는 작업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쌀 한 가마니 값이 나가는 비싼 어란을 사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어란 만드는 일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 밤에는 생선 배를 가르고, 낮에는 음식점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70년대에 접어들자 어란 만드는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됐다. 너도나도 사정이 어려웠고 멀리서 어란 사러 오던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김씨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안 먹는다고 안 만들면 이 귀한 건 그냥 책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숭어 한 마리 살 돈도 없지만 나는 계속 만들었어.”
 
김광자 명인은 1999년 해양수산부에서 한국식품 명인 인증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99년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에서 명인 인증을 줬다. 명인 칭호는 특정 지역의 음식 가공과 조리 분야에 기여한 명인에게 주어진다. 해당 분야에서 20년 이상 정진하거나, 명인에게 전수 교육을 받았거나, 10년 이상 같은 업계에 종사한 사람만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안동소주·문배주 같은 술을 빚는 명인, 엿이나 한과·유과를 만드는 명인을 포함해 국내에는 61명밖에 없다. 그중 김씨는 수산 분야의 유일한 명인이다.

얘기하는 도중에 김씨가 냉장고를 열어 다른 어란을 하나 꺼내왔다. 색이 검고 진했다. 한 입 베어 물자 쓰고 비릿한 맛이 나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김씨는 “지난주 다녀간 대기업 외식사업부 연구원이 만든 어란”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사람이 열정으로 만들어봤다는 태도가 기특해서 제대로 만드는 법을 이것저것 일러주고 돌려보냈다.

“전에는 어란 만드는 봄에만 바빴어. 요즘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어란 먹고 싶다고, 만드는 법 알려달라고 그렇게들 찾아와.” 김씨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요리 연구가, 음식평론가, 유명 셰프다. 얼마 전에는 ‘백주부’ 백종원씨도 직접 어란을 맛보고 돌아갔다.


70년대 찾는 이 없었지만 손 못 놓겠더라
낮에 식당 일하고, 밤에 숭어 배를 갈랐지
요샌 세계의 진미라네 … 백종원도 다녀가


 


이젠 백화점에서 먼저 찾아와

인터뷰 도중 광주에서 아들 승옥씨가 도착했다. 승옥씨는 “알이 터져 못생긴 돌멩이 같은 어란을 실컷 먹고 자랐다”고 했다. “맛은 똑같지만 뒤틀리거나 속이 튀어나온 것은 상품 가치가 없어요. 100개를 만들어도 파는 건 70개밖에 안 되죠.”

광주에서 공무원을 하며 평범하게 살던 승옥씨가 모친의 일을 돕기로 한 건 80세의 어머니가 어란 만드는 힘든 일을 그만두지 않아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자다가도 수십 번씩 일어나 모양을 잡고, 기름을 바르는 걸 보면서 어느 날 그게 곧 어머니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됐죠.”

2년 전 부부는 연로한 모친을 대신해 북촌민예관의 초청을 받아 ‘어란 강연’에 참석했다. 일본식 어란 카라스미(唐墨)와 이탈리아 어란 보타르가(Botarga), 한국 어란의 맛과 역사를 비교하는 자리였다. 당나라 때 검고 네모진 먹 ‘카라스미’처럼 생겼다고 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일본 어란은 간장 없이 소금으로만 절인다. 한국 어란처럼 모양을 잡거나 참기름을 바르지 않는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보타르가는 숭어 알이나 참치 알로 만드는데 소금과 어란 비율이 2대 1이라 짠 맛이 가장 많이 난다. 어란은 오직 참숭어 알로만 만든다. 산란 직전의 알로 만들어 염장·건조 후에도 쫄깃하면서 툭 터지는 식감이 씹는 즐거움을 준다. 세 가지 어란을 비교하면서 승옥씨는 한국 어란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됐다. 맛도, 향도, 식감도 세계의 진미에 뒤지지 않는다. 그의 어란은 신사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라노’, 통인동 ‘갈리나 데이지’ 같은 고급 식당에서 사용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현대백화점 식료품관에서 고급 식재료로도 판매된다.

명절이나 어란 만드는 봄철에 서울에서 내려오는 두 손주도 어란에 관심이 많다. 맛 평가도 하고, 이런 공정은 기계로 하면 어떻겠는지 의견도 낸다. 김씨는 손주들이 서울에 올라갈 때면 꼭 어란을 들려 보낸다. “군청 근처에 땅을 좀 사놨어. 조금만 더 젊었으면 이 귀한 어란 알리려고 박물관이라도 지었을 텐데 그거 못 한 게 아쉽지.” 평생 어란에 바친 삶이 이제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김씨다. “이제 아들·며느리가 손주와 함께 어란을 만드는 시대가 오겠지. 10대가 만든다 해도 지금처럼만 하면 되니까, 난 아무 걱정 안 해.”

영암=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이영지 기자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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